[데스크시각] K예능과 표현의 자유

입력 2021-05-20 04:08

중국의 인기 오디션 프로그램 ‘청춘유니’ 시즌3가 우유 사재기 논란 끝에 이달 초 폐지됐다. 이 프로그램은 한국인에게도 낯설지 않다. Mnet의 ‘프로듀스 101’을 표절해 ‘짝퉁 프듀’로 불렸기 때문이다. 시청자가 투표로 아이돌 연습생을 뽑아서 데뷔시킨다는 콘셉트만 비슷한 게 아니라 자기소개 영상, 피라미드 모양 무대, 교복 패션, 주제곡과 안무까지 ‘프로듀서 101’과 판박이다.

중국 방송의 한국 예능 베끼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10년대 중반까지는 합법적으로 판권을 구입하거나 공동 제작하곤 했지만, 사드 사태로 인해 한한령이 발동되면서 표절이 본격화됐다. 후난위성TV의 ‘중찬팅’은 tvN의 ‘윤식당’을 그대로 베꼈다. 출연진의 캐릭터, 화면 구성, 주방 구조, 카메라 각도까지 비슷하다. 같은 방송의 ‘친애적객잔’은 JTBC의 ‘효리네 민박’, ‘향왕적 생활’은 tvN의 ‘삼시세끼’와 유사하다. 상하이 동방위성TV의 ‘사대명조’는 KBS의 ‘안녕하세요’를 베꼈는데 출연자가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는 모습까지 똑같다. JTBC의 ‘히든싱어’, MBC의 ‘전지적 참견시점’, SBS의 ‘미운 우리 새끼’, Mnet의 ‘너의 목소리가 보여’도 각각 ‘은장적 가수’ ‘너와 나의 매니저’ ‘아가나소자’ ‘우적가신아’라는 이름으로 표절됐다.

중국 방송이 저작권 계약 없이 불법 표절에 나선 것은 규탄할 일이다. 하지만 당국이 막아도 표절할 수밖에 없을 만큼 한국 예능의 경쟁력이 탁월함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한국 예능도 한동안 외국 방송 베끼기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공중파 방송사 사장이 표절 방지 대책 마련을 약속하고 표절방지심의위원회를 구성할 정도였다. 일본 방송사가 양국의 프로그램을 비교한 영상을 내보내며 조롱한 일도 있었다.

반전은 IPTV 보급과 종합편성채널 허용으로 방송 채널이 다변화되면서 일어났다. 대형 방송사의 관료주의와 권위주의에서 벗어난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제작이 활기를 띠면서 인재들이 유입됐고 시장도 확대됐다. 하지만 인터넷TV나 위성TV 보급으로 방송 채널이 확대된 것은 세계적 추세다. 우리가 모방했던 일본, 우리를 따라잡겠다는 중국이 흉내 내기 힘든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민주주의가 성숙하면서 확대된 창작의 자유, 표현의 자유다.

중국에선 법과 제도, 권력에 의해 표현의 자유가 제한된다. SNS에 정부를 비판하는 메시지가 올라오면 곧바로 삭제된다. 콘텐츠에 대한 사전·사후 검열도 작동한다. 창작의 자유가 없으면 창의적일 수 없다. 거대한 시장을 배경으로 막대한 자본을 투입해도 극복할 수 없는 한계다.

일본의 상황은 조금 다르다. 사회 관습과 조직 문화, 정치적 극단주의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 일본 우익은 입맛에 맞지 않는 콘텐츠의 상영이나 전시를 저지하기 위해 실력 행사에 나선다. 2019년 일본 아이치현 트리엔날레에서 평화의 소녀상 전시가 중단된 게 대표적 사례다. 이들은 최근에도 김미례 감독의 영화 ‘늑대를 찾아서’가 반일 영화라며 상영 중단을 압박하고 있다. 시민들이 침묵하고 방조하면 자기검열을 낳고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킨다.

한국에서도 표현의 자유는 시험대에 올라 있다. 웹툰의 여혐·남혐 논란에 이어 드라마 ‘조선구마사’와 ‘설강화’는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올랐다. 청와대가 지난 14일 내놓은 답변은 이렇다. “창작물에 대한 정부의 직접 개입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정부는 국민 정서에 반하는 내용에 대해 창작자, 제작자, 수용자 등 민간에서 이뤄지는 자정 노력 및 자율적 선택을 존중합니다.” 전적으로 옳다. 핵심은 자정과 자율이다. K예능, K콘텐츠의 미래도 여기에 달려 있다.

송세영 문화스포츠레저부장 sysoh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