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먹는 하마 ‘비트코인’… “기후변화 초래할 수도”

입력 2021-05-22 04:07
미국 뉴욕 드레스덴에 위치한 천연가스 발전소 ‘그리니지’에 설치된 가상화폐 채굴기 모습. 미국의 한 사모펀드 회사는 2017년 이 발전소를 사들이고 2019년 ‘비트코인 채굴회사’로 업종을 바꿨다. 그리니지 발전소 홈페이지

“비트코인 채굴에 화석연료, 특히 석탄이 쓰이는 걸 우려한다. 가상화폐(암호화폐)는 좋은 아이디어지만 환경에 막대한 비용을 치를 순 없다.”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는 지난 14일 비트코인을 활용한 테슬라 상품 결제를 잠정 중단한다는 소식을 발표하면서 환경오염을 근거로 들었다. 비트코인을 포함해 수개월 동안 급등해왔던 가상화폐 시세는 머스크의 트윗 한 마디에 폭락했다.

가상화폐는 환경오염을 유발할까. 일부 가상화폐 지지자들을 제외하면 다수 전문가는 막대한 에너지를 소비하는 현재의 가상화폐 ‘채굴(mining)’ 방식이 탄소 배출량을 증가시키고 기후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전력소비 27위…심화되는 채굴 경쟁

비트코인 채굴에 소비되는 전력량은 국가급 규모다. 케임브리지대 대안금융센터가 발표한 ‘비트코인 전력소비지수’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비트코인 채굴장이 소비하는 전력 추정치는 연간 144.28테라와트시(TWh)에 달한다. 국가별로 줄 세운다면 27번째로 스웨덴(131.79TWh), 우크라이나(128.80TWh), 아르헨티나(125.03TWh)보다 앞선다.

가상화폐가 환경오염과 연결되는 지점은 채굴 과정에 있다. 특히 비트코인 등 작업증명(Proof-of-Work) 방식을 채택한 가상화폐는 채굴에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채굴자들은 블록체인 내 새로운 블록을 생성하기 위해 반복 연산을 수행하며 경쟁하고 블록을 생성하는 ‘채굴’에 성공하면 비트코인을 보상으로 받는데, 이 연산 과정에서 막대한 에너지가 사용되는 것이다.

케임브리지대 연구진은 가상화폐 가격이 상승할수록 에너지 소비량도 함께 증가한다고 주장한다. 비트코인 가격이 오르면 채굴자들은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더 많은 장비를 운용해 채굴에 나서지만 새로운 블록을 생성하기 위한 연산은 갈수록 더 어려워져 채굴의 효율성이 점점 떨어진다는 설명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동일한 양의 비트코인을 얻으려면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게 되는 구조인 것이다.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지난 4월 게재된 논문에 따르면 오는 2024년 비트코인 채굴에 드는 전력량은 350.11TWh로 영국을 제치고 세계 12위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값싼 화석연료 찾아 이동하는 채굴장

가상화폐 채굴장 대다수는 값싼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다. 채굴 과정에서 에너지를 대규모로 사용하기 때문에 가능한 비용이 저렴한 곳을 찾아 떠나는 것이다. 중국이 전체 비트코인 채굴의 4분의 3을 차지하고 있는 이유다.

베이징대 중국과학원 연구진은 “값싼 전기를 구할 수 있고 채굴 전문 하드웨어 제조사와 가까운 탓에 중국이 전체 비트코인 채굴의 75%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며 “적절한 개입이 없다면 중국에 집중된 채굴은 중국의 배출가스 감축 노력을 저해하는 위협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가상화폐 정보업체 디지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비트코인 채굴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는 연간 36.95메가톤(Mt)으로 뉴질랜드가 연간 배출하는 양보다 많다. 앤드루 해튼 영국 그린피스 IT 총책임자는 “19세기 에너지원으로 21세기 테크놀로지에 전력을 공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발전소가 아예 ‘비트코인 채굴회사’로 간판을 바꾸는 사례도 나왔다. 미국의 한 사모펀드 회사는 2017년 뉴욕 드레스덴에 있는 천연가스 발전소 ‘그리니지’를 사들이고 2년 후 비트코인 채굴에만 전력을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약 6000㎡ 규모의 이 발전소엔 가상화폐 채굴기 7000대가 설치됐다.

회사 대표는 “그리니지는 다른 채굴업자들과 달리 발전소와 자체 채굴 장비를 보유하고 있다”며 “우리의 통합 비즈니스 모델은 경쟁업체보다 상당한 경쟁우위를 제공한다”고 홍보했다.

“가상화폐 환경오염 과장됐다”

반면 가상화폐 지지자들은 채굴 작업에 재생에너지도 활용된다며 가상화폐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과장됐다고 반박한다. 가상화폐 자산운용사 코인쉐어스는 2019년 보고서를 내고 “비트코인에 쓰이는 전력의 74.1%가 재생에너지에서 나오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어떤 대규모 산업보다 더 친환경적”이라고 주장했다.

멜템 데미러스 코인쉐어스 최고전략책임자(CSO)는 CNBC에 “가상화폐가 에너지를 사용한다는 것 자체도 나쁜 게 아니다”며 “이메일을 보내고 저장하는 일에도 에너지가 사용된다. 하지만 우리는 이메일이 환경에 나쁘다고 말하진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비트코인은 에너지 사용에 있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투명하고 다른 산업은 훨씬 불투명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재생에너지 사용량에 대한 추정치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투자전문매체 인베스토피디아는 “비트코인 채굴에 드는 전력의 39%만이 재생에너지에서 나온다는 케임브리지대 연구 결과도 있다”며 “가상화폐를 찬성하든 반대하든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가 엄청난 양의 화석연료를 사용한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강조했다.

정우진 기자 uz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