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후보 중에 나만큼 치열하게 싸운 사람이 어디 있나.”
정세균 전 총리가 ‘민주당의 심장’인 호남을 방문해 확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그동안의 온화한 스타일을 벗어 던지고 부동산·검찰 개혁 등 각종 현안에 목소리를 내며 선명성을 더하기 시작했다. 그는 “유능한 사람이 대통령이 돼야 한다”며 개혁을 완성할 수 있는 적임자는 자신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국민일보는 호남 민심 투어에 나선 정 전 총리를 지난 17일 12시간 동안 동행 취재하며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숨 가쁜 일정 속에서 그는 자신의 강점인 경륜과 친화력을 앞세워 저평가 우량주에서 고평가 우량주로 거듭나겠다며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정 전 총리는 이날 첫 일정으로 순천 장대공원을 방문, 경전선(광주~부산) 전철화 사업을 둘러봤다. 정 전 총리가 온다는 소식에 정 전 총리의 대학후배들인 고려대 순천교우회가 마중을 나오기도 했다. 정 전 총리는 이 자리에서 오랜 국정운영 경험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는 유사한 사례를 줄줄이 언급하며 설명했다. 경전선 용역 결과를 합리적으로 도출해야 국토부를 설득할 수 있다며 순천시 관계자들에게 ‘국토부 공략법’도 제시했다.
이후 정 전 총리는 검정색 카니발을 타고 수행 보좌진 3명과 함께 여순사건 위령탑 참배 장소로 향했다. 그는 이날 카니발 안에서 2시간 동안 쉴 새 없이 전화기와 태블릿PC를 번갈아 살펴보며 ‘조직 관리’에 열중했다. ‘SK계’라는 강한 조직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정 전 총리는 틈날 때마다 지역 관계자 등과 통화하며 지지를 호소했다.
여순사건 위령탑 앞에서는 경쟁자인 이낙연 전 대표의 빈틈을 정조준했다. 이 전 대표가 대표 역임 당시 여순사건 진상규명과 피해자 명예회복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을 담은 여순사건특별법을 본 회의에서 통과시키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를 지키지 못했다는 것을 언급한 것이다. 정 전 총리는 “서영교 행정안전위원장에게 올 상반기에 법안을 상정해서 처리할 수 있도록 협조를 당부하겠다”며 “대선이 있어도 이 법은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니 염려 말고 기다려 달라”고도 했다.
정 전 총리는 시·도의원 간담회에서도 “아무리 생각해도 저를 쓰셔야 할 것 같다”고 적극 구애했다. 그는 “호남에 민주당 현역 의원이 26명인데 현재까지 저를 공개적으로 지지한 분이 절반”이라며 “제가 5% 지지율의 벽을 넘으면 더 오실 것이고, 10%를 넘으면 숫자가 훨씬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정통성이나 일관성, 성과를 봐도 (다른 주자들과) 저는 비교가 안 된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정 전 총리는 부동산 정책에 대한 생각도 거침없이 드러냈다. 그는 “깜짝 놀랄 전략이 정부 초기에 나왔어야 했다”며 “우리 부동산은 8년 침체하고 4년 살아남는 사이클인데 선제적으로 대비했어야 했는데 그걸 하지 못한 게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이어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을 때 강력한 한방이 필요했는데, 땜질을 몇 번 하면서 이어갔다. 그래서 지금 어려움에 처해 있다”고 쓴소리를 했다.
숨 가쁜 일정 중에도 정 전 총리는 보좌진을 챙겼다. 시·도의원 간담회 직후 정 전 총리는 “커피나 한잔하자”며 보좌진을 카페로 불러들였다. 기자에게도 “체력도 중요하지만, 정신력은 더 중요하다”고 했다. 28년간 정 전 총리 차량을 운전한 김형배 비서관은 “시민들에게 정 전 총리 차량이라고 하면 ‘응원한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며 “그 말에 저도, 총리도 피로가 해소된다”고 했다.
마지막 일정인 5·18 광주 전야제 행사에서 광주 시민들은 정 전 총리가 등장하자 일제히 모여들었다. 한 60대 여성은 “총리님 꼭 대통령 되세요. 이번엔 광주가 밀어드릴게요”라고 외쳤다. 시민들은 저마다 정 전 총리와 사진을 찍으며 “총리 하는 동안 고생 많으셨다”는 말을 남겼다. 한 시민은 “정세균, 할 수 있다!”를 외치기도 했다.
정 전 총리는 일정 사이사이 기자와 동행하면서 현안에도 선명한 목소리를 냈다. 최근 검찰 개혁을 강조한 데 대해 “원래 저는 검찰 개혁에 대해선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며 “노무현 대통령 시절부터 공수처를 추진하고, 노력한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미스터 스마일’로 설명되는 온화한 이미지에 대해 “실제로는 손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당대표로서 나같이 치열하게 싸운 사람은 없다”며 “예전에 사립학교법·방송법 등 결단해야 할 때는 항상 했는데 사람들이 마음 좋은 옆집 아저씨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대권 경쟁자인 이재명 경기지사와 이낙연 전 대표의 정책도 비판했다. 그는 “이 지사와 이 전 대표의 정책은 포퓰리즘”이라며 “그래도 내 정책은 양심이 있는 편”이라고 했다. 최근 여권 주자들의 공약이 ‘퍼주기’ 비판을 받자 이를 반박한 것이다. 정 전 총리가 제시한 사회적 상속은 상속세·증여세 등을 재원으로 하는 데 상속세 목적 자체가 부의 재분배에 있고, 미래씨앗통장의 경우 20년이라는 시간이 있는 만큼 다른 주자들과의 정책과 달리 재원 문제에서 자유롭다는 것이다.
정 전 총리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해서는 “성실한 사람”이라면서도 “재판 내용 등은 모르지만 불공정의 문제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했다.
민주당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그는 “정당은 귀가 커야 하고 그다음에 항상 여론만 쫓아다니면 안 된다”며 “아니다 싶으면 손해를 감수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글·사진 박재현 기자 j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