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놀 수 있다는 것은 충분히 신뢰할 수 있는 친구라는 것을 증명한다. 그래서 처음 만난 사람들 사이의 서먹한 관계를 녹이기 위해서 놀이를 활용하기도 한다. 놀이가 사람을 연결시켜주는 원리는 놀이 속의 ‘매직서클(magic circle)’ 효과 때문이다. 하위징하는 그의 책 ‘호모루덴스’에서 매직서클, 즉 ‘일상의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 마법 공간’을 놀이의 핵심 특성으로 본다. 매직 서클에서 공유한 특별한 체험은 그들만이 통하는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게임은 가장 발달된 놀이이기에 가장 강력한 매직서클을 만들어낸다.
장황하게 게임의 매직서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게임과 별로 연관성이 없던 기업들도 게임을 통해 젊은 고객과 접점을 넓히려는 시도가 대대적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백화점에서 볼 수 있던 명품브랜드들도 너도나도 게임 속으로 진출하고 있다. 예를 들어, 패션브랜드 구찌의 경우는 ‘테니스클래시’라는 게임을 출시하여 자사의 제품을 착용한 캐릭터를 통해 MZ세대들이 게임을 즐기도록 서비스를 한 바 있다. 최근에는 ‘구찌 버추얼 25’라는 디지털 전용 신발을 만들기도 하였다. 이 신발은 실제로 신으려고 사는 것이 아니라 로블록스와 같은 게임 속 캐릭터에게 신기기 위한 신발이다. 매직서클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게임캐릭터에다 구찌를 신기려고 돈을 쓰는 것이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루이비통이나 버버리 등의 명품브랜드들도 게임에 자사 제품을 진출시키는 일에 공을 들이는 것을 보면 매직서클이 가상이 아닌 현실이라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생필품 브랜드들도 게임 속에 자사의 제품을 녹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예를 들면 시리얼, 음료, 과자부터 밥반찬 김까지 식품업계는 물론 속옷과 같은 의류, 보수적인 금융업은 물론 심지어 자동차 엔진오일 회사까지 게임과 협업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 최근 식품업체는 게임 속 세계관을 자사의 제품에다 입히려는 시도가 나타나기도 하였다. 오뚜기에서는 게이머를 위한 ‘힐러’라는 이름의 라면이 출시되기도 하였다. 이 라면은 게이머즈 왕국의 왕이 게이머들의 영양보충을 위한 요리대회에서 첫 번째로 우승한 요리라는 컨셉이다. 게이머가 배가 출출하다면 적어도 한번은 힐러를 먹어야 할 것 같은 묘한 의무감이 드는 것은 바로 매직서클의 효과라고 할 것이다.
소설가이자 미래학자인 아서 클라크는 ‘충분히 발전한 기술은 마법과 구분할 수 없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러고 보니 사람의 능력을 뛰어넘은 인공지능과 5G를 넘어 6G로 향하는 네트워크 기술, 그리고 나날이 발전하는 컴퓨팅 기기가 팬데믹 상황과 어우러져 마법과 같은 세상이 도래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게임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참여하기를 거부하는 사람은 적응하기 어려운 그런 세상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을 기업들이 이미 간파하고 있던 것이다. 참 다행스럽게도 말이다.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