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된 野 “여성 할당제 폐지”?
여야의 구애 경쟁을 촉발한 건 4·7 재보선 결과다.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 이번 선거에서 서울 거주 20대 남성은 오세훈 후보에게 72.5%에 달하는 표를 몰아줬다. 진보 성향으로 여당이 전통적인 자기 지지층이라고 믿었던 20대가 대거 이탈한 셈이다. 반면 야당으로선 정치적 불모지나 다름없던 청년층에서 승리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자신감을 얻은 야당이 ‘이대남 정치’로 치고 나가고, 당황한 여당이 허겁지겁 쫓아가며 온갖 인기영합성 공약을 쏟아내는 모양새는 이런 맥락에서 만들어졌다.
전문가들은 정치권의 협소하고 1차원적인 대응 방식은 청년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남녀 사이에 ‘가짜 적대’를 만들 뿐이라고 지적한다. 문제 개선에 도움은 안 되고 불필요한 갈등만 유발한다는 것이다.
여야가 앞다퉈 내보이는 ‘청년 정책’을 살펴보면 이런 문제점이 잘 드러난다. 이준석 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최고위원이 대표적이다. 그는 이번 재보선 결과를 두고 “민주당이 페미니즘에 올인한 결과”라며 ‘여성 할당제 폐지론’을 꺼내 들고 있다. 그는 심지어 문재인정부에서 민생이 무너진 것도 여성 장관 할당제 탓이라고 주장했다.
이 전 최고위원과 함께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도 20, 30대 남성의 역차별을 앞세워 표심을 공략해 왔다. 두 사람은 ‘게임의 규칙’이라는 차원에서 공정을 강조하며, 남성들이 사회구조적 문제 대신 여성에게 분노의 화살을 돌리도록 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특히 전문가들은 이와 같은 전략이 보수 정당을 지지할 만한 사회경제적 배경을 가진 부모를 둔 중산층 이상의 청년들에게 일정 정도 먹혔다고 분석한다.
하지만 정작 이들은 물론 국민의힘에선 20대 청년들의 실제 삶과 관련된 정책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구의역 김군이나 평택항 이선호씨와 같은 노동 계급의 청년들, 취업 경쟁에 뛰어들지도 못한 채 소외된 저소득층 청년의 문제에선 선택적으로 침묵하고 있다.
당황한 與 “군 가산점제”… 헤매는 민주당
문재인정부에 싸늘해진 이대남의 마음을 돌이키기 위해 민주당은 군대 문제에 집중하며 맞불을 놓고 있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40대 박용진 의원은 남녀 모두 100일 정도 기초군사훈련을 받자는 내용의 ‘남녀평등복무제’ 도입을 제안했다. 하지만 여성이 군대에 가면 해결된다는 식의 접근 방법은 보수 야당의 젠더 갈등 조장과 다를 바 없는 것이라는 혹독한 비난에 직면했다. 남성들의 군대에 대한 불만을 해결하려면 우선 군대 내 인권문제나 처우 개선을 다뤄야 하는데 이런 논의 없이 여성들을 끌어들였다는 지적이다.
현재 민주당 개별의원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거론되는 것은 군 가산점 재도입과 군 경력을 인정하는 방안이다. 전용기 의원은 “군 가산점 재도입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겠다”며 “위헌이라 다시 도입하지 못한다면 개헌을 해서라도 전역 장병이 최소한의 보상은 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병기 의원도 군 복무를 마친 이를 ‘국방 유공자’로 대우하자고 나섰다. 취업·주택청약 등에서 국가유공자에 준하는 혜택을 주자는 게 골자다.
여기에 이낙연 전 대표도 제대 남성에게 사회출발자금으로 3000만원을 주자며 가세했다. 민주당도 결국 ‘20대 남성 역차별론’을 기정사실화하며 젠더 갈등에 편승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문제는 정작 민주당이 내놓는 청년 정책에서도 노동 계급의 청년들은 빠져 있다는 점이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18일 “유권자들은 진보적 의제와 노선을 기대하며 민주당을 찍었는데, 정작 민주당은 그런 이슈에 대해 실질적인 관심과 정책 대안을 갖지 못하고 있다”며 “민주당은 청년층 내에서도 어떤 계층을 목표로 삼아야 할지 모르고 있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실증 근거 없는 ‘남성 역차별’
전문가들은 여야가 하나같이 ‘역차별론’에 매몰돼 헛다리를 짚고 있다고 비판한다. 박권일 사회비평가는 “20대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 실증 분석에서 드러난 적은 없다”며 “젠더 갈등은 일종의 가짜 적대”라고 설명했다. 그는 “근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남성 역차별 같은) 그런 담론을 누군가가 계속 부추기면 마치 실재하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면서 그 사례로 과거 영호남 지역 갈등을 들었다. 갈등할 이유가 없는 쌍방이 정치권에 의해 싸우도록 부추겨졌다는 점에서 젠더 갈등과 지역 갈등이 유사하다는 것이다.
젠더 갈등 논란에서 매번 등장하는 “할당제가 역차별을 낳는다”는 주장부터가 과장된 측면이 크다. 할당제로 혜택을 보는 20대 남성도 많기 때문이다. 정부의 ‘양성평등채용목표제’가 대표적이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2019년 이 제도 덕에 추가 합격한 남성은 235명으로 전체의 76.1%였다. 여성은 74명으로 23.9%에 불과했다. 교육대학 입학에서도 20대 남성은 사실상 할당제의 혜택을 보고 있다. 이는 할당제의 목적이 한쪽 성에 혜택을 몰아주기 위해서가 아닌 양성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박 평론가는 “세상에 존재하는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소수자 우대 정책)엔 이유가 있다”며 “어떤 맥락에서 그런 정책이 나왔는지 구체적으로 따져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역차별이라고 주장하기에 앞서 해당 분야가 한쪽 성에 불리하게 짜인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닌지를 먼저 보자는 의미다.
최태섭 문화비평가도 “(역차별론의) 사회적 증거가 하나도 없다”고 단언하면서도 “여성이 사회적 약자라는 명제를 20대 남성이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남성으로서 받는 혜택이 없다고 느낄 공산이 큰 탓이다. 실제로 경제활동인구조사 등 통계를 보면 20대 여성 고용률이 남성보다 2~3%가량 높다. 취업난에 허덕이는 20대 남성이 동년배 여성을 사회적 약자로 인식하기 어려운 이유다. 하지만 30대로 넘어가면 사정은 완전히 뒤바뀐다. 남성 고용률이 여성보다 30% 가까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청년 문제는 다차원적 접근 필요
정치권이 청년 문제를 단순화한다는 비판도 잇따른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청년 문제는 굉장히 다차원적인데, 접근은 1차원적인 게 문제”라고 짚었다. 서 연구원은 “20대 남성만 하더라도 남녀 공히 겪는 불평등의 문제, 자산불평등·자산세습 문제가 가장 밑자락에 있고 그 윗자락에 코로나19로 격화되는 이행 지연의 문제가 있으며 그다음에는 교육제도라든지 군대 문제가 있다. 따라서 해결책은 개별 차원에서 모두 나와야 한다”며 “(정치권에선 여성과의 갈등이라는) 한 차원으로만 해결하려 한다. 할당제에 이해관계가 걸린 남성이 얼마나 되느냐”고 꼬집었다.
신 교수도 “20대 남성에게 핵심적인 이슈는 일자리와 소득, 주거 등 사회·경제적 문제”라면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적대감, 사회적 균열, 이런 것들을 유발하는 방향으로 담론을 구성하는 건 영향력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로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청년실업 등 우리와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는 해외에선 문제를 실용적으로 풀어가고 있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서 연구원은 “유럽연합(EU)은 청년보장제도(Youth guarantee)를 채택해 청년의 노동시장 진입을 돕고 있고, 미국에선 오바마 행정부가 청년 정책을 지원하기 위해 부처별로 정책조정위원회를 꾸렸다”며 “우리 역시 공공직업훈련프로그램 등의 인프라를 깔아 주는 게 당면 과제”라고 말했다. 갈등만 부각시키기보다 대안 마련에 힘쓰라는 얘기다.
안명진 기자 amj@kmib.co.kr
[이대남은 왜?]
▶①
▶②
▶③
▶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