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왜 거기서 나와’ 영탁의 노래를 듣고 무릎을 쳤다. 삶의 지혜가 담겨서다. 만약에 제목이 ‘너 당장 거기서 나와’라면 어땠을까. 식은땀이 났을 것 같다. 예능에서 살아남는 비결은 ‘낄끼빠빠’다. 낄 때와 빠질 때를 잘 가려야 오래 버틴다. 부른다고 무조건 얼굴 내밀고 돈 준다고 무제한 거기 머물면 유통기한이 짧아진다.
학생이 ‘복전’을 상담하러 왔을 때 난 고민에 빠졌다. 복전이 뭔지 몰라서였다. 복수혈전? 방송사에 오래 머물다 보니 언어영역이 한쪽으로 치우쳤나 보다. 복전이 복수전공의 준말이라고 제자가 알려준 후에야 순발력을 발휘했다. “내 인생도 복전이야. 교사로 출발해서 PD 되고 그 후로 계속 방송사와 학교를 오가는 중이거든.”
예능도 복전이 대세다. 그라운드에서 스튜디오로, 코트에서 세트로 넘어오는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 안정환이 오더니 서장훈이 온다. 박세리가 오고 허재가 온다. 경로 이탈일까, 영토 확장일까. 평생에 우물 하나 파기도 어려운데 어떻게 이 선수들은 우물 두 개를 파는 괴력을 발휘할까.
사람들은 살면서 옷을 바꾸고 가구를 바꾼다. 휴대전화를 바꾸고 벨소리도 바꾼다. 집 전화밖에 없던 시절 일일드라마엔 이런 대사가 종종 나왔다. “엄마 바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엄마를 바꿀까.” “정말 엄마를 바꿀 수 있다면 누구랑 바꾸지.” 그러면서 바꾸기 어려운 순서도 정해봤다. 국적은 바꿀 수 있어도 고향은 바꾸지 못한다. 이름과 얼굴은 바꿀 수 있어도 인성은 바꾸지 못한다. 신문 바꾸기(끊기)도 여간 어렵지 않다. ‘절대사절’이 안 통하자 나중에 이런 글자로 바꾸는 걸 보았다. ‘새로 이사 왔음’ 영화에선 영혼까지 바꾸지만, 현실에선 말이나 생각은 바꿔도 생업을 바꾸기가 쉽지 않다. 재주도 있고 재수도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꿈만 꾸다가 황혼을 맞는 경우가 흔하다.
현실은 꿈꾸는 자와 바꾸는 자가 뒤섞인 종합운동장이다. 시합을 마치고 자리에 누워 불현듯 연예계 이적을 꿈꾸는 스포츠 스타라면 먼저 싸이의 노래 ‘연예인’을 들어보기 바란다. ‘나의 그대가 원한다면 어디든 무대야’로 시작하는데 중간에 하이라이트가 나온다. ‘그대의 연예인이 되어 항상 즐겁게 해 줄게요’ 중요한 건 그대와 무대다. 그대가 없으면 무대도 없다. 그대가 사라지면 무대도 사라진다. 그런데 여기서 정신을 잃으면 안 된다. 내가 사라져도 그대는 남고 무대도 남기 때문이다. 한없이 뜨겁다가 한순간에 얼음장 되는 건 관중석이나 객석이나 방구석 1열이나 다 비슷하다.
연예계 생존의 법칙은 싸이의 노랫말 속에 대충 나와 있다. 첫째, 그대가 원해야 하고 둘째, 무대는 어디든 크게 상관없으며 셋째, 그대를 항상 즐겁게 해줘야 한다. 대중이 원하지 않으면 연예인은 즉각 퇴장해야 한다. 대중은 깨달음보다 즐거움을 원한다. 열심히 한다고 봐주는 곳이 아니다. 대중을 즐겁게 해줄 수 없으면서도 무대에 계속 머문다면 그건 반칙이다.
이제 CSI(과학수사대)를 가동할 차례다. 예능에서 C는 캐릭터, S는 스타일, I는 이미지다. 캐릭터는 바꿀 수 없다. 타고나기 때문이다. 안정환이 이영표가 될 순 없다. 박지성이 박찬호처럼 되긴 불가능하다. 그러나 스타일은 어느 정도 바꿀 수 있다. 본인이 원한다면 전문가(스타일리스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트렌드도 어느 정도 스타일 변화에 영향을 미친다. 안정환이 반지의 제왕 시절처럼 지금도 테리우스 스타일을 고수(고집)한다면 어떨까. 서로 좀 불편할 것 같다.
이미지는 그대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이다. 비치는 건 순간이지만 새겨지면 안 바뀐다. 그대가 사랑한 나의 이미지, 혹은 그대가 거부한 나의 이미지는 상당히 오래간다. 바뀌는 계기는 대체로 사건·사고가 난 경우다. 스타의 겉과 속이 다르고 앞과 뒤가 다르다는 게 명백히 드러날 때 그대는 퇴장을 명한다. 한때 종횡무진하다가 지금 딱한 처지가 된 사람을 볼 때마다 나는 두 권의 베스트셀러를 종합한 제목이 떠오른다. ‘아프니까 비로소 보이는 것들’(‘아프니까 청춘이다’+‘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그러니까 안 아플 때 잘 관리해야 한다. 사고는 과할 때 일어난다. 과장(과대포장), 과민, 과속, 과욕, 과음. 그래서 오버는 위험하다.
오버하는 것 같으면서도 영리하게 선을 지키는 사람 중 하나가 강호동이다. 사실상 그는 연예계 복전의 시초이기도 하다. 예능과 체육을 합해 예체능이라고 하는데 그는 예체능을 석권한 최초의 통합챔피언이라 해도 과언(여기에도 ‘과’가 붙었네)이 아니다. 20년 전에 내가 쓴 책 ‘스타의 향기’(까치출판사)에서 강호동편의 첫 문단은 이랬다. “모래바닥의 천하장사가 잠시 외도를 하는 것으로 간주했던 사람들은 이제 생각을 바꾸어야 할 시점에 이른 듯하다. 멀리서 보면 달콤한 체리 동산이지만 막상 발을 디뎌보면 바닥에 독이 흐르는 험준한 연예거리에서 10년째 꾸준히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책의 개정판을 낸다면 10년을 30년으로 바꿔야 한다. 천하장사 5번, 백두장사 7번, 백상예술대상, KMS 방송 3사 연예대상에서 모두 대상을 받았으니 한 시대를 풍미한 예체능인임을 부인하긴 어렵다. 원래 풍미(風靡)란 바람에 초목이 쓰러진다는 뜻인데 늘 팀의 중심에 선 강호동의 경우 오히려 곁에 있던 초목들을 일으켜 세웠다고 보는 게 더 어울린다.
스포츠 스타에겐 결정적 순간이라는 게 있다. 강렬한 한 방이 스토리를 남기고 이미지를 만든다. 복서 홍수환은 1977년 카라스키야에게 4번 다운된 뒤 3회 KO승한 4전 5기 신화가 늘 동행한다. 박세리는 98년 IMF 구제금융 때 방송된 공익광고 이미지가 여전히 빛을 발한다. 양희은의 노래 ‘상록수’의 절정인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기라’에 투사된 맨발의 투혼은 지금도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2002년 월드컵 16강 한국-이탈리아 연장전에서 골든골을 넣고 반지에 입맞춤 세리머니를 연출한 안정환은 또 어떤가. 가정형편 때문에 쉬는 날엔 공사판을 전전했는데 지하철 목동역 건설 때 인부로 벽돌을 쌓았다는 얘기를 듣고는 그 역 지나갈 때마다 안정환 생각이 난다. 일용직 청년을 볼 때면 ‘당신도 미래의 스타’라는 격려를 맘으로 전하게 되는 건 스토리텔링의 힘이다.
운동장에서 양보란 패배나 다름없다. 하지만 승부근성만큼 개성, 품성도 중요하다. 중학교 1학년 때 씨름을 시작한 강호동은 마산상고를 졸업하던 1989년에 자신의 우상 이만기를 2대 0으로 이긴다. 아마 이것이 그에겐 결정적 순간일지 모른다. 살다 보면 결정적 전화도 받게 된다. 1993년 4월 이경규로부터 받은 전화는 그의 운명이 바뀌는 시발점이었다. 라디오에 출연해 대본도 없이 웃음을 유발하던 재주를 기억한 이경규는 자신이 진행하던 ‘코미디 동서남북’에 패널로 나와 달라고 부탁한다. 그로부터 10년 후 강호동은 내게 고백한다. “처음 얼마 동안은 방송이 너무 쉽다고 생각했습니다. 눈만 뻐끔거려도 대중은 웃어주었으니까요.” 그러나 이어지는 말은 무시무시했다. “돌아보니 소름이 끼칩니다.”
예체능인들은 스포츠맨십에서 쇼맨십으로 인생의 배(ship)를 갈아탄 사람들이다. 강호동과 대화를 나누며 그가 예능의 바다에서 젓고 있는 배들이 여러 척임을 알아냈다. 맡은 프로에 자신을 내던지는 오너십(주인의식), 진행자(선장)로서의 리더십(책임감), 멤버들과 프렌드십(우애), 제작진과 파트너십(상호존중), 그리고 대중과 스킨십(친밀감).
한 우물을 파는 게 좋을지 나쁠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어떤 우물이건 파다가 빠져서 갇히는 건 스스로 경계해야 한다. 우물에 갇히면 우물 안 개구리들과 동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