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테크는 선택 아닌 필수… “뒤처지면 벼락 거지 못 면해”

입력 2021-05-19 04:03
더이상 월급모아 집사고 자녀도 출가시켰던 '상식'을 유지하기 어려운 시대다. 사회 전반에 응축된 투심은 동학개미운동과 암호화폐 광풍처럼 때론 긍정적으로, 그러나 다소 걱정스럽게 표출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요즘 우리는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누구를 만나도 '부동산·주식·코인'만 얘기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점이다. 재테크 필수 시대의 명암(明暗)을 짚어보고자 한다.


직장인 박모(34)씨는 요즘 운전할 때마다 경제 전문 팟캐스트를 틀어놓고, 퇴근 후에는 1~2시간을 경제 뉴스를 읽는다. 지난해 코로나19 하락장 때 주식투자를 시작했는데 점차 비중이 늘어 현재 순 자산의 50%가 주식에 들어가 있다. 유료 주식투자 공부 모임도 가입했다. 박씨는 “‘내 집 마련’을 이루려면 이젠 한시도 허투루 쓸 수 없다”고 말했다.

치솟은 집값, 자산·소득 격차 심화로 재테크는 더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선진국보다 금융 상품 투자 비중이 월등히 낮았던 한국에서도 ‘투자 지향적 패러다임’이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는 모습이다. ‘이렇게 살다간 벼락 거지를 못 면한다’는 2030세대의 박탈감, 자녀에게 집 한 채 사주기는커녕 까딱하다간 하위층으로 밀려날 수 있다는 기성세대의 인식 전환이 맞물리면서 ‘일상 재테크’ 시대가 뿌리내리고 있다.

“국민은 작년 첫 성공 궤적을 밟았다”

직장인 이모(27)씨는 코로나19로 인한 유동성 장세에 너도나도 주식에 뛰어들자 “뒤처질 수 없다”는 마음에 주식에 진입했다. “주식으로도 안정적으로 자산을 늘릴 수 있다”는 유튜브 투자전문가의 말에 마음이 움직였다. 이씨는 “개별 종목은 공부가 많이 필요하다고 해 일단 안정적으로 수익이 난다는 상장지수펀드(ETF)에 투자했다”며 “현재 수익률은 미미하지만, 장기적으로 복리 효과를 누리다 보면 끝은 창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식하면 패가망신’ 신념이 있었던 회사원 조모(59)씨도 그동안 예·적금만 넣었다. 투자보단 부동산 대출 상환이 더 급선무였다. 그러나 코로나19 변동장과 동학개미운동 등으로 인식이 바뀌었다. 미국 나스닥 종목과 ETF에 조금씩 투자를 시작한 그는 “노후 대비 차원에서 10년 정도는 묵혀놓을 생각”이라며 “자녀에게 더 일찍 재테크의 중요성을 일깨워줄 걸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최준철 브이아이피자산운용 대표는 18일 “지난해는 국민이 대형주 투자로 사실상 최초로 성공 궤적을 경험한 해”라고 평가했다. 1997년 외환위기, 2001년 9·11테러 등 주가가 곤두박질쳤을 때 기회를 놓쳤던 사람들이 많았던 점을 언급했다. 그는 “‘다시 기회가 오면 나도 사야지’했던 사람이 많았으나 실제 실행한 사람을 거의 못 봤다. 그런데 유일하게 전체가 맞춰서 움직였던 때가 바로 지난해”라며 “집단지성이 한 번에 액션으로 옮겼다. 농축해서 한방에 쓴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그는 “그런 기회가 날마다 오는 게 아니다. 이제부터 실력 차이가 나올 것”이라며 “‘종잣돈을 불렸으니 조금 더 지식을 쌓아서 해보자’는 방향으로 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소득 높이려면? 승진보다 투자

소득을 유의미하게 늘리기 위해선 업무 능력 증진보다 금융 투자가 빠르다는 인식은 이미 자리를 잡은 것으로 보인다. 최근 한국경제연구원 설문조사(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 대상)에 따르면 응답자 중 32.9%가 소득 증가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으로 ‘주식·부동산 등 재테크’를 꼽았다. ‘업무 역량 강화 및 승진’이라고 답한 사람은 14.9%에 그쳤다. 자산양극화 시대에 근로소득을 향한 솔직한 시선이다. 주식 투자 비중도 늘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가계 전체 금융자산 가운데 주식·투자펀드 비중은 21.8%로 전년(18.1%)보다 상승했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지난해 주식시장을 계기로 투자자들은 좋은 기업 주식을 장기간 갖고 있으면 주가가 오를 가능성이 크다는 걸 깨달았다”며 “주식은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해야 하는’ 것으로 자리 잡는 모습”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기업으로서도 기업공개(IPO) 등으로 흘러가는 자금이 늘면서 성장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민아 김지훈 기자 minajo@kmib.co.kr

[일상이 된 재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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