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현종(33)은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서 선발진이 약한 텍사스 레인저스의 마운드를 지탱하는 ‘롱맨’이다.
선발투수가 빠르게 무너지면 투입돼 위기를 넘기고, 셋업맨이나 마무리투수에게 마운드를 넘겨줄 때까지 최대한 많은 이닝을 소화하는 ‘숨겨진 선발’이 롱맨의 역할이다. 긴 시간을 소화하는 구원투수라는 의미에서 ‘롱릴리프’(long relief)로 통용되고, 이닝의 대부분을 소화한다는 뜻에서 ‘벌크 가이’(bulk guy)로도 불린다. 정규리그 개막 전에 구성되는 5명의 선발진이 시즌 중 재편되거나 6선발 체제로 전환되면, 롱맨은 그 안에 들어갈 1순위 후보로 지목된다. 양현종은 바로 그 위치에 있다.
양현종은 이제 크리스 우드워드(45) 감독이 등판 일정을 예고할 만큼 텍사스 마운드에서 중요한 자원으로 분류된다. 우드워드 감독은 18일(한국시간) 미국 언론들과 화상 인터뷰에서 오는 21일까지 미국 텍사스주 알링턴 글로브라이프필드로 뉴욕 양키스를 불러 펼치는 홈 4연전 중 유일하게 선발투수를 지정하지 않은 3차전 등판 투수 중 하나로 양현종을 언급했다. 텍사스와 양키스의 3차전은 20일에 열린다.
양현종은 선발로 지목되지 않았다. 우드워드 감독은 “양현종이 많은 이닝을 소화할 것이다. 벌크 가이 역할을 한다. 선발 투수는 아니다”라면서 3차전 선발로 “우완 투수가 나설 예정이다. 우타자를 많이 보유한 양키스 타선을 고려했다”고 말했다.
통상 선발투수에 이목이 쏠리는 감독의 마운드 운영 계획에서 불펜이 먼저 언급된 것이다. 양현종에 대한 우드워드 감독의 구상이 선발과 불펜의 경계선에 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메이저·마이너리거 신분에 따라 연봉을 다르게 받는 스플릿 계약을 맺고 텍사스에 입단해 초청 선수 신분으로 스프링캠프에 합류한 지난 2월과 비교하면 양현종의 입지는 완전하게 달라졌다.
양현종은 앞서 등판한 4경기 중 롱맨으로 투입된 3경기에서 모두 4이닝 이상을 소화해 선발투수보다 길게 던졌다. 유일하게 선발 등판한 지난 6일 미네소타 트윈스와 원정경기(3대 1 승)에서 3⅓이닝(4피안타 1실점)만을 던지고 교체돼 구원 등판보다 짧은 이닝을 소화했다. 양현종은 지금까지 16이닝을 소화하면서 승패 없이 13피안타(3피홈런) 13탈삼진 6실점 평균자책점 3.38을 기록했다.
텍사스의 팀 평균자책점은 4.38. 양현종의 평균자책점보다 1점이나 많다. 이로 인해 텍사스의 팀 평균자책점은 메이저리그 30개 구단에서 하위권인 22위에 머물러 있다. 에이스 카일 깁슨을 시작으로 일본인 아리하라 고헤이, 조던 라일스, 마이크 폴티네비츠, 댄 더닝 순이었던 텍사스 선발 로테이션은 부상과 부진으로 변화를 거쳐 왔다. 최근에는 전력에서 이탈한 투수들도 등장했다. 아리하라는 부상자명단에 올랐고, 잠시 선발로 활약한 웨스 밴자민은 마이너리그로 강등됐다.
우드워드 감독이 양현종을 선발 로테이션 진입의 경계선에서 실험을 반복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양현종 스스로도 롱맨 역할에 안주할 수 없다. 지난해까지 KIA 타이거즈 에이스였던 양현종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선발 자원이다. 스스로 “시간이 필요하다”고 밝힌 메이저리그 공인구 적응이나 피홈런 수 감소는 텍사스 선발 진입을 위한 과제로 남아 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