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복 소비, 내수 진작 효자지만 양극화 심화

입력 2021-05-19 04:07

코로나19로 위축됐던 소비가 한꺼번에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보복소비’(pent-up)가 현실화됐다. 다만 계층별 양극화가 뚜렷하고, 보복소비 대상이 특정 품목에 편중돼있다는 점에서 지속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전문가들은 실물경제의 회복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반짝 특수’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기획재정부가 최근 발표한 ‘5월 최근경제동향’의 내수 지표를 보면, 지난달 백화점 매출액은 전년 대비 26.8% 증가했다. 같은 달 국내 카드 승인액의 전년 대비 증가율 또한 18.3%였다. 백화점 매출액과 카드 국내승인액은 3개월 연속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소비자심리지수(CSI)도 올해 들어 꾸준히 상승 중인데, 지난 3월부터 두달 째 기준치(100)를 웃돌고 있다.

다만 소비는 소득 계층별로 양극화되는 양상을 띄고 있다. 명품 소비와 백화점 매출이 눈에 띄게 증가하는 등 고소득층을 중심으로 소비 욕구가 분출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 3월 백화점 3사의 매출은 1년 전보다 77.6% 증가했다. 지난해 루이비통·샤넬·에르메스 3개 브랜드 매출은 2조5000억원으로, 15~33% 증가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천재지변 상황에서 저소득층은 보복소비를 할 수 있는 여건조차 안 된다”며 “보복소비는 결국 고소득층을 중심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 글로벌 연구소도 최근 보고서에서 “고소득 가구가 보복소비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경제 회복 역시 한쪽으로 치우치는 양극화가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보복소비가 특정 품목에 편중되는 것도 한계로 지적된다.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 연간 산업활동동향 자료에 따르면, 승용차 등 내구재(10.9%)는 늘었지만, 의복 등 준내구재(-12.2%), 화장품 등 비내구재(-0.4%) 판매는 줄었다. 내구재는 비싸면서도 오랫동안 사용되는 특징이 있다. 보복소비가 내구재를 중심으로 이뤄지면 소비 증가폭이 필연적으로 둔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올해 들어 준내구재 등으로 소비패턴이 전환되는 조짐도 보이지만, 음식료품 등 비내구재 소비는 여전히 부진하다.

전문가들은 보복 소비가 반짝 특수에 그치지 않으려면 실물경제가 본 궤도에 올라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홍석철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코로나19로 소상공인·자영업자 등 서비스업의 피해가 큰데, 지금 벌어지는 소비의 성격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며 “내수경기를 활성화시킬 만큼 임팩트있다고 보기 힘들다”라고 말했다. 이어 “결국 집단면역이 이뤄지고 거리두기가 끝나야지만 소비가 안정감 있게 회복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보복소비가 인플레이션을 부추길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우려된다. 석유·원자재의 공급 부족과 함께 보복 소비 등 억눌린 수요가 함께 폭발하면 인플레이션이 압력이 현실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세종=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