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인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지난해 역대 최악의 한 해를 보낸 국내 정유업계가 지난 1분기 일제히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국제유가 상승에 따른 정제마진 개선 등에 힘입은 결과다. 정유사들이 사업 다각화에 나서고 있지만 유가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모습은 여전하다. 배터리, 수소사업 등 신사업 실적도 체질 개선으로 이어지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분석이다.
SK이노베이션·GS칼텍스·에쓰오일·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 4사’가 최근 발표한 1분기 실적에 따르면 각 사 모두 흑자를 달성하며 전망치를 뛰어넘는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 SK이노베이션의 1분기 영업이익(이하 모두 연결기준)은 5025억원, GS칼텍스 6326억원, 에쓰오일 6292억원, 현대오일뱅크 4128억원 등 국내 정유 4사의 영업이익이 총 2조원을 넘는다. 앞서 지난해 4분기 흑자 전환에 성공한 에쓰오일은 1분기 들어 최근 5년간 분기 영업이익 중 최고 수준을 달성하기도 했다.
정유업계의 1분기 실적을 견인한 영업이익 대부분은 정유사업에서 나왔다. SK이노베이션의 1분기 매출액 중 석유 부문 비중은 63.5%(5조8765억원), 영업이익은 4161억원이다. GS칼텍스도 정유 부문에서의 매출액은 전체의 76.9%(4조9444억원), 영업이익은 6326억원에 달한다. 에쓰오일의 정유 부문 영업이익은 4620억원, 현대오일뱅크는 2113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4분기 에쓰오일을 제외한 SK이노베이션(-1925억원), GS칼텍스(-952억원), 현대오일뱅크(-1109억원) 모두 석유 부문에서 크게 영업이익 손실을 봤다.
정유사들이 석유 부문 이익을 본 것은 국제 유가 상승으로 인한 재고 평가이익이 증대된 영향이다. 한국석유공사 오피넷에 따르면 17일 기준 싱가포르 시장에서 거래되는 두바이유 가격은 배럴당 67.17달러에 형성돼 있다. 지난해 4분기 두바이유 가격 44.6달러에 비하면 50% 가량 상승한 것이다. 이로 인해 정유사가 보유하고 있는 원유 재고 가격이 급등해 정유사들의 재고 평가이익이 크게 발생했다.
정제마진(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 값·수송비 등을 뺀 중간 이윤)이 지난 분기 개선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업계에서는 통상적으로 흑자를 보는 기준을 정제마진이 배럴당 4달러 내외를 넘어야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싱가포르 정제마진은 지난해 하반기 평균 1.8달러 선까지 내려갔으나, 이달 들어 3달러대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달 말에는 3.38달러까지 올라 올 들어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지난해 말부터 석유제품 수요가 증가하며 정제마진도 오른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정유사들의 신사업 부문의 비중은 미비하거나 오히려 손실을 가져오는 요인으로 나타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전기차 배터리 공장의 초기 비용 발생 등으로 인해 기타 부문(배터리 포함) 영업이익에서 1767억원 손실을 봤다. SK이노베이션은 헝가리 1·2·3공장, 중국 창저우·옌청·후이저우 공장, 미국 1·2공장을 증설해 양산을 개시했거나 앞두고 있다.
이처럼 국내 정유사들이 정유 부문에 기대는 부분이 큰 탓에 1분기 호조세가 2분기까지 이어질지도 불확실하다. 우선 석유 가격이 1분기만큼 드라마틱하게 급등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크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지난해 말 백신 접종이 시작되며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된다는 기대감에 투자세력이 원유를 사들였고 이 때문에 가격이 급등한 것”이라며 “2분기에도 1분기 수준의 이익을 보려면 원유 가격이 거의 배럴당 90달러까지 올라야 하는 셈인데, 코로나19 이전에도 보통 70달러 선에 형성됐기 때문에 이같은 상승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라고 말했다.
일부 국가를 제외한 인도, 동남아, 남미 등에서 코로나19 사태가 악화되고 있는 것도 2분기 석유제품 수요에 악재로 작용할 우려가 있다. 블룸버그의 지난 16일(이하 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인도는 코로나19 사태 악화로 전국 대부분이 폐쇄에 상태에 머물며 지난 1일부터 15일까지의 도로 운송 연료 판매가 지난달보다 5분의 1 수준으로 감소했다. 인도는 세계에서 3번째로 큰 원유 수요국이다.
블룸버그는 지난 13일 국제에너지기구(IEA), 미국에너지정보국(EIA), 석유수출국기구(OPEC) 모두 2분기 석유 수요 전망을 낮췄다고도 보도했다.
그럼에도 탄소중립과 에너지 전환이 산업계 전반의 화두가 된 만큼 장기적으로는 미래 먹거리에 대한 투자를 계속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SK이노베이션은 전기차 배터리 사업 투자를 지속적으로 늘리고 있다. 에쓰오일은 차세대 연료전지 기업 에프시아이(FCI)의 지분 20%를 확보하고 전략적 협력 관계를 구축했으며, 수소 충전 인프라 구축을 위해 특수목적법인 코하이젠(Kohygen·Korea Hydrogen Energy Network)에도 참여하는 등 수소사업 진출을 계획하고 있다.
협회 관계자는 “석유사업에서 나온 이익으로 투자하는 식의 순환이 계속해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탄소배출을 줄이는 기술에 업계가 자력으로 투자하기엔 외국과의 기술 격차도 크고 R&D 자금도 약하다”며 “정부 차원에서 업계에 떠맡기기보다는 기술개발을 위해 세제혜택을 부여하는 등 협력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지애 기자 am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