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구좌읍 하도리 우리 집 뒷밭에서 깊은 밤 꿩이 갑자기 자지러지듯 크게 울어댔다. 우리 집은 앞이 바다고 뒤로는 밭이다. 밭에는 밭담이 빼곡하다. 먹이와 은신처가 많아 여러 동물의 서식 환경이 좋다. 꿩은 보통 아침과 해질녘에 한 차례씩 울어댄다. 수컷들은 늘 그렇게 자기 영역을 알린다. 그런데 이날 울음은 위기로 인한 공포와 방어를 소리치고 있었다. 오랫동안 지속됐다. 자신의 은신처를 누군가 공격하고 있는 듯했다. 품고 있는 알이나 부화한 새끼를 뱀, 고양이, 또는 오소리가 이미 먹고 있거나. 근처 돌담 구석에서는 꿩이나 다른 새들이 먹힌 뒤 털만 수북이 쌓인 모습을 간간이 볼 수 있다. 제주도 야생에서는 밤마다 먹고 먹히는 동물의 세계가 치열하다.
한 번은 밤에 옆 밭에서 개가 요란하게 짖어댔다. 작대기를 들고 나가보니 그 개는 해안도로 가로등 밑에서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어찌할 줄 모르고 돌담 너머 밭쪽을 향해 짖고만 있었다. 얼마 전부터 우리 동네를 어슬렁거리던 주인 없는 개였다. 그쪽 밭담 어느 구석에 어렵사리 만든 잠자리를 누군가 차지하고 들어앉은 모양이다. 이 어린 개는 감히 싸울 엄두도 못 내고 가로등 불빛 아래서 울고 있지만 그쪽에서는 어둠 속에서 아무런 반응도 없다. 누굴까.
우리 동네 한 갯바위에서 농어 시즌에 두 친구가 밤낚시를 하고 있었다. 농어를 잡을 때마다 뒤에 세워둔 트럭 짐칸에 던져두고 낚시를 계속했다. 살림망에 넣을 시간도 아까워서. 그런데 고기는 계속 잡는데 짐칸 고기는 마릿수가 늘지 않고 그대로였다. 한 친구가 친구를 의심하고 고기를 더 가져가기 위해 어디 감추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그 친구는 오히려 네가 감추는 줄 알았다고 했다. 사실은 고양이가 계속 물어가고 있었다. 제주도 바닷가에 터 잡고 사는 고양이들이다. 이들도 이제는 제주도 야생이다. 그날 둘이 60㎝가 넘는 농어 6마리를 잡았는데 집에 2마리만 가져갔다.
5년 된 우리 집에 제비둥지가 세 개 있다. 3년 전까지 세 곳에서 모두 산란과 부화를 하고 지난해 두 곳에서 부화를 했다. 올해는 한 곳에서만 부화했다. 나머지 두 곳은 아직 비어 있는 채 짝을 찾지 못한 제비가 짝을 부르고 있다. 여름까지 짝을 지을지 알 수 없다.
세화리 단골 식당에는 여섯 개 둥지가 있는데 올해 한 곳만 부화했다. 제주도로 이주한 지 5년 사이에 제비가 줄어드는 게 이렇게 보인다. 2005년 충북산림환경연구소와 금강유역환경청 보고서는 그로부터 20년 전에 비해 제비가 100분의 1로 줄었다고 했다. 사람의 영역이 넓어지면서 야생의 영역이 좁아진다. 야생에 적합하지 않은 환경이 인간에게는 적합할까.
인간에게 길들여진 반려동물이 야생으로 쫓겨나고 인간을 피해 살던 야생동물이 터전을 잃어 줄어드는 현상이 통계가 아니고 눈에 보이게 가속화하고 있다. 이런 현상을 걱정해야 하는지, 아니면 그렇게 변하는 거야 하고 이제는 인정하고 살아야 하는지, 나도 마음을 정해야 마음이 편해질 것 같다.
박두호 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