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롬떨러니따쉬

입력 2021-05-19 04:07

소문으로만 듣던 그날이었다. 아침의 맑은 공기를 마시기 위해 창문을 열었는데 눈앞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흡사 재난영화 속의 한 장면 같았다. 부다페스트의 모든 길거리에 쓰레기가 산처럼 쌓여 마구잡이로 놓여 있었다. 얼마나 많은지 길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어깨에 쓰레기가 자꾸만 스치고 있었다. 부다페스트를 온통 뒤덮은 쓰레기. 이것은 바로 ‘롬떨러니따쉬’라는 헝가리 연례행사다.

이날 하루 길거리에 버려진 쓰레기는 국가에서 무료로 수거해간다. 정체불명의 물건부터 시작해 아직 쓸 만한 물건까지 종류를 가리지 않고 말이다. 나는 마감할 원고가 있어 집에 꼼짝하지 않고 있으려다가 이런 특별한 날을 놓칠 수 없어서 바깥으로 나갔다. 그러자 쓰레기 더미를 맨손으로 뒤적거리는 사람들이 보였다. 진주라도 찾아 헤매는 것 같았다. 그런 그들을 한참 바라보다가 꽤 괜찮은 접시를 찾아낸 사람을 보고선 나도 욕심이 생겼다. 진주는 아니더라도 뭔가 찾아내고 싶었다.

그러다 책만 잔뜩 버려진 구간을 발견했다. 헝가리어로 된 시집과 소설집 등이 버려져 있었다. 누군가 이미 사용해버린 노트도 버려져 있었는데 그 안에는 실력 좋은 누군가가 그려놓은 그림이 가득했다. 나도 모르게 노트를 챙기고 책도 여러 권 챙겼다. 이 모든 건 쓰레기가 아니라는 생각에 돈을 지불해야 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돈을 요구하는 사람은 없었다.

인형과 로봇을 챙겨가는 꼬마들, 접시나 가구를 챙겨가는 어른들. 문득 이 행사의 숨은 의도가 궁금해졌다. 분명 부다페스트에 이날 단 하루만 여행을 오게 되는 사람은 이 광경을 보고 부다페스트에 대한 인식이 나빠질 수도 있는데 왜 이런 모험 같은 행사를 하는 것인지 알고 싶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 행사의 취지는 쓰레기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쓰레기를 쓸모로 순환시키는 데에 목적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부다페스트(헝가리)=이원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