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7 재보선 이후 20대 남성(이대남)이 집중 조명을 받으면서 남성을 향한 ‘역차별’ ‘혐오’ 등이 토론장 이슈로 떠올랐다. 디시인사이드, 루리웹 등 남성 중심 커뮤니티에서 온라인상의 ‘남성을 향한 혐오’(남혐) 표현 등을 색출, 공격하고 나서면서 논란은 더 커졌다.
2000년대 초반부터 ‘젠더 갈등’은 온라인상에서 일상적이고 반복적으로 관찰되기 시작했다. 익명으로 활동할 수 있는 커뮤니티와 같은 온라인 공간이 혐오 표출의 무대가 됐다. 주로 남성들의 ‘여성을 향한 혐오’(여혐)가 지배적이던 초창기와 달리 최근 경향은 남혐에 대한 남성들의 반발이 두드러진다.
이는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남성을 향한 혐오나 역차별이 실제 생활에서 그만큼 커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온라인상에서 일부 극단적인 세력에 의해 ‘젠더 혐오’ 자체가 크게 퍼진 것처럼 보이는 왜곡이 발생하고 있는 것일까.
2000년대부터 최근까지 온라인상에서 ‘젠더 갈등’을 일으킨 대표적인 사례를 모아봤다. 이 사례들은 여혐과 남혐, 페미니즘과 안티 페미니즘이 촉발되고, 상호작용을 통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보여준다.
온라인 어떻게 ‘젠더 갈등’ 장이 됐나
주로 스포츠, 게임, 자동차 등의 관심사를 기반으로 성장한 한국의 주류 온라인 커뮤니티는 남성 이용자 중심의 성격이 강했다. 몇몇 커뮤니티에선 여성을 상품화하거나 조롱 또는 혐오하는 콘텐츠와 표현이 만연했다. 여성 관련 이슈에 툭하면 등장하는 ‘꼴페미’라는 비난, ‘된장녀’ ‘김치녀’ 등의 조롱 섞인 표현은 2000년대 중반 커뮤니티와 포털 댓글 등을 통해 유행어처럼 자리 잡았다. 2009년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여대생이 ‘키 작은 남자는 루저(looser)라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무차별적 공격을 받은 사건은 최근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혐오의 행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여성 혐오가 만연했던 온라인 커뮤니티에 ‘여혐’에 대한 반발이 ‘남성 혐오’의 형태로 본격 등장한 건 2010년대 들어서면서다.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당시 메르스 의심환자인 한국인 여성 2명이 홍콩에서 자가격리 조치를 거부했다는 뉴스가 나오자 대표적인 남초 커뮤니티인 디시인사이드 ‘메르스 갤러리’에 “이기적인 김치녀” 등 혐오성 글이 올라왔다. 이에 여성 이용자들이 ‘김치녀’를 ‘김치남’으로 바꿔 부르며 반박, 대응했다. 갤러리는 서로를 비방하는 글로 도배됐다. 당시 디시인사이드 운영진이 ‘김치녀’라는 표현은 놔둔 채 ‘김치남’이라는 단어 사용을 금지하면서 남녀 이용자 사이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이때 이곳을 떠난 일부 이용자들이 만든 것이 대표적인 여초 커뮤니티인 메갈리아다.
김예란 광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16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기존 온라인 커뮤니티는 남성 중심적 문화가 강했다. 여성들의 대학 진학 및 사회적 활동과 더불어 2010년대 들어와 여성의 온라인 활동도 일반화되면서 여혐에 대한 반발이 등장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현실판 혐오 ‘강남역 살인 사건’
메갈리아는 실제 일간베스트(일베) 등에서 벌어지는 여성 혐오에 본격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김치녀’는 ‘한남충’(한국 남성을 지칭·비하하는 용어)으로, ‘맘충’은 ‘애비충’(아버지+벌레의 합성어)으로 맞불을 놓는 식이었다. 이른바 ‘미러링’(문제 행동을 따라함으로써 당사자가 잘못을 자각하도록 하는 일)의 본격화다.
그러던 중 ‘젠더 전쟁’에 불을 붙인 사건이 발생한다. 2016년 5월 17일 서초동에 있는 노래방 건물의 남녀 공용화장실에서 30대 남성이 20대 여성을 흉기로 무참히 살해한 이른바 ‘강남역 살인사건’이다.
당시 여성들은 이 사건을 ‘여성 혐오 범죄’로 규정하고 강남역 앞에서 피해자를 추모했다. 이 사건은 여성에게 혐오가 실질적 위협,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경고로 여겨졌다. 강남역 주변은 피해자를 추모하는 쪽지로 가득 찼다. 고인에 대한 추모는 ‘여혐 범죄’에 대한 분노로 이어졌다. ‘여자라 살해당했다’ ‘너는 남자라 살았다’ 등과 같은 감정적인 반발은 ‘남성들로부터 당한 여혐을 그대로 되돌려주자’는 ‘미러링’ 폭발로 이어졌다.
메갈리아에서 파생돼 생겨난 여초 커뮤니티 워마드 등에서 남성을 향한 ‘미러링 공격’은 격해지고 거칠어졌다. 이에 남성도 반격에 나섰다. 일베, 디시인사이드 회원들은 강남역 추모집회에 맞서 남녀 혐오를 반대한다는 시위를 열고, 일부 회원은 추모를 조롱하는 내용을 담은 화환을 보내 여성들의 분노를 키웠다.
이후 워마드 등에서 남자 화장실 몰카 유포 사건, 남아 폭행 인증글 등의 사례까지 등장하자 극단적인 여성들의 움직임이 공격 대상이 됐다. 남성 커뮤니티에서 ‘메갈’은 혐오를 조장하는 극단적인 여성우월주의를 나타내는 용어로 통용되고, ‘안티 페미’ 목소리가 힘을 받았다.
넥슨사 게임 성우 퇴출 논란
2016년 7월 넥슨사의 게임 ‘클로저스’ 캐릭터를 연기한 여성 성우 퇴출 사건은 메갈리아 등에 대한 거부감이 전면에 드러난 사례로 꼽힌다. 당시 성우 A씨는 ‘Girls do not need a prince’(소녀들은 왕자님이 필요 없다)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은 모습을 SNS에 올렸는데, 이 티셔츠가 메갈리아를 후원한 이에게 준 것임이 알려지면서다.
게임의 주 소비층인 10, 20대 남성들은 ‘남혐을 조장하는 메갈리아에 대한 후원은 부적절하다’면서 강하게 반발했다. 한발 더 나아가 성우 교체를 요구하며 불매운동을 벌였고, 넥슨은 결국 다음 날 A씨와 계약을 해지하고 성우 교체를 발표했다. 당시 몇몇 웹툰 작가·만화 번역가들이 A씨를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가 레진코믹스 회원들의 집단탈퇴 사태를 촉발하기도 했다. ‘노동권 침해’라며 넥슨을 비판하는 논평을 낸 정의당에선 당원들의 연쇄 탈당이 이어졌다.
최근 GS25 캠핑 행사상품 광고에 메갈리아를 상징하는 손가락 모양의 이미지가 들어 있다며 불매운동이 벌어진 것도 클로저스 사건과 닮았다. 남초 커뮤니티 회원들은 다른 기업 홍보물에서도 비슷한 이미지를 색출해내고, ‘허버허버’(급하게 음식을 먹는 남성의 모습) ‘오조오억’(남성의 정자 개수를 의미) 등 남혐 용어를 사용한 방송사, 기업에 항의하며 실력행사를 벌이고 있다.
‘미투’에…남성들 “잠재적 가해자”
2018년 서지현 검사가 검찰 내부에서 성추행을 당했다며 폭로한 이후 ‘미투운동’(Metoo·나도 당했다)이 확산됐다. 이후 연예계, 문화계부터 정치권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성폭력 고발이 이뤄졌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한 학생들의 ‘스쿨 미투’도 이어졌다. 미투운동을 중심으로 여성들이 연대하는 가운데 남성 커뮤니티에서는 “남성 전체가 가해자로 취급받는다”는 거부감이 표출됐다. 미투를 선언한 이에 대한 ‘2차 가해’ 여부를 놓고 공방도 이어졌다. 남성 일부는 성폭력 무고에 대비한다며 ‘펜스 룰’(여성과 접촉 자체를 피함)을 펼치기도 했다.
같은 해 11월 서울 이수역 인근 한 주점에서 발생한 남성과 여성 일행 간 다툼은 ‘성 대결’ 구도가 되며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다. 당시 여성 측이 ‘여성 혐오로 인한 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하면서다. 반면 남성 측은 ‘여성들이 먼저 남성 혐오적 욕설을 했다’고 주장하며 첨예하게 대립했다. 워마드 등 여초 커뮤니티에서 이 사건을 ‘여성 혐오 범죄’로 규정하고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려 청와대 답변까지 받았다. 이는 최근 대법원 판결을 통해 여성의 모욕적 언동으로 사건이 유발됐고, 남녀 모두 서로를 모욕하고 쌍방 폭행한 사안으로 결론 내려졌다. 남성 누리꾼들은 ‘쌍방 폭행이 여성 혐오 범죄로 둔갑한’ 사건이 ‘남성의 집단 목소리’ 필요성을 느끼게 한 계기 중 하나라고 꼽는다.
10대 ‘혐오 학습’ 우려도
여성주의 진영에서는 남성들, 특히 20대 남성들의 이 같은 반발을 ‘백래시’(사회적 변화에 대한 반발, 공격)로 규정한다. 이와 달리 래디컬 페미니즘(급진적 여성주의)운동과 ‘페미니스트’를 자처해 온 문재인 대통령과 현 정부에 쌓여 있던 반감의 표출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온라인상에서 성별을 둘러싼 갈등과 혐오 현상 그 자체는 물론 그 아래 숨어 있는 혐오의 원인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말과 글로 갈등을 빚는 온라인 공간에서의 상대 성별을 혐오하는 목소리가 표출되는 현상과 현실 사회의 남녀 차별 문제가 꼭 일치한다고 보긴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 발생하는 성폭력과 성차별 문제에 반발해 터져나온 분노의 목소리와 ‘상대가 싫다’는 감정의 표출인 혐오는 구분해서 봐야 문제의 본질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에는 인터넷 사용 나이가 어려지면서 온라인 공간에서 표면화된 성별 혐오가 10대들에게 학습된다는 점에서 우려도 커지고 있다. 현실세계에서 성 역할과 성차별 문제에 대한 생각을 갖추기도 전에 ‘꼴페미’ ‘한남’ 등과 같은 표현으로 성 인식이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10대 청소년이 온라인을 통해 학습한 혐오의 언어를 성별에 대한 자아 인식 과정에서 그대로 학습할 수 있다”며 “이런 부분을 어떻게 소통해 갈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민우 조민영 기자 cmwoo11@kmib.co.kr
[이대남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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