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39)씨는 2018년 경기도 고양시의 아파트로 이사했다. 그는 서울 은평구 전셋집에 살다가 분양한 지 얼마 안 된 새 아파트로 갔다. 매매대금은 전세금을 빼고 일부 대출을 받아 해결했다. 이씨가 이주를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아이였다. 와이프는 아이가 다닐 초등학교와 가까운 아파트를 원했다. 이씨는 “당시 서울에서는 조건에 맞는 아파트를 우리 형편에 구할 수 없었다”며 “아이가 더 크면 서울로 다시 들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강모(28)씨의 경우도 비슷했다. 강씨는 2019년 경기도 고양시 아파트로 이사해 월세 100만원을 룸메이트 친구 두 명과 나눠 내고 있다. 대학교 때부터 살고 있던 서울 마포구 8평 오피스텔을 떠났다. 그는 오피스텔 월세 75만원을 더 감당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최근 직장을 얻었지만 동시에 부모의 지원이 끊긴 탓이다. 강씨는 “나중에 서울로 다시 들어가려면 지출을 줄여 ‘시드 머니’를 모아야 한다”며 “그래야 ‘영끌’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경기도로 밀려나는 서북권 사람들
이씨와 강씨는 다시 서울로 돌아올 수 있을까. 하지만 2017~2020년 서울 서북권의 인구 흐름은 그들의 바람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사람들은 마포구, 서대문구에서 시 경계 지역인 은평구로, 은평구에서 다시 경기도로 흘러갔다. 30~50대의 가족 단위 이동이 두드러졌다. 전세가격 상승 시기에 인구 이동은 더 증가했다.
서울시 경계로의 이동은 전셋값 상승 여파로 보인다. 마포구, 서대문구, 은평구의 전세가격은 2020년 하반기로 갈수록 격차가 더 벌어졌다. KB부동산 기준 2017년 1월 마포구, 서대문구, 은평구의 ㎡당 아파트 평균 전세가격은 각각 559만2000원, 436만7000원, 386만9000원이었다. 세 지역의 전세가격은 2020년 12월 기준 728만1000원, 567만7000원, 514만8000원으로 각각 올랐다. 서대문구나 은평구 전세가격이 4년 사이 128만~131만원 오르는 동안 마포구는 168만9000원 급등했다.
실제 마포구 주민들은 2017~2020년 은평구(5827명), 경기도 고양시(5777명), 서대문구(4495명) 순으로 가장 많이 옮겨갔다. 특히 마포구에서 은평구로 이사를 간 인원은 2018~2019년 1100명대를 유지하다가 2020년 1951명으로 크게 늘었다. 마포구에서 서대문구로 전출한 인원 역시 2019년 685명에서 2020년 1235명으로 약 2배 증가했다. 2020년의 급격한 증가세는 전셋값의 흐름과 연동된다. 마포구의 ㎡당 아파트 평균 전세가격은 2017~2019년 말까지 500만원대 중후반을 유지했다. 그런데 2020년 초 600만원대로 오른 뒤 2020년 12월 728만1000원으로 정점을 찍었다.
서대문구 사람들도 은평구나 경기도로 밀려났다. 이들이 2017~2020년 가장 많이 전입한 지역은 은평구(6805명), 경기도 고양시(4624명) 순이었다. 은평구 주민들은 경기도 고양시(2만208명)와 파주시(2628명)로 가장 많이 이주했다.
이 흐름을 주도한 건 30~50대였다. 마포구에서 서대문구로 2017~2020년 전출한 인구 가운데 30대가 1145명으로 가장 많았다. 서대문구에서 은평구로 전출한 인구는 20대(1492명)와 30대(1441명)가 많았다. 은평구에서 경기도 고양시로 전출한 인구는 30대(4728명)와 40대(3404명)가 가장 많았다. 장희순 강원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17일 “서울의 높은 전셋값을 감당하기 어려운 세대가 인근 지역으로 피신하듯 쫓겨났다고 본다”며 “특히 서울 전세나 월세를 살던 30대가 자가 마련을 위해 경기권으로 이동한 빈도가 높았다”고 말했다.
은평구에서 경기도 덕양구로 전입한 가구는 2017년 3291가구(전체 가구의 6.3%), 2018년 3548가구(6.7%)에서 2019년 4601가구(8.4%)로 매년 늘었다. 2020년에도 4452가구(7.6%)로 여전히 1위였다. 예년에 비해 비교적 높은 비중을 차지한 2019년은 창릉신도시 계획 발표 등 ‘호재’가 있던 해였다. 함영진 직방 데이터랩장은 “서울에서 덕양구 삼송동 등 택지개발지구로 입주하는 수요가 많았다”며 “서울 집값이 비싸지니 서울과 인접한 신도시 입주가 늘어나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2021년 4월 기준 덕양구 아파트 평균단위 전세가격은 600만원으로 2017년 1월에 비해 64.0%나 올랐다. 이씨의 덕양구 아파트 최근 호가는 2018년 매매 때보다 배 이상 오른 10억원 안팎을 오가고 있다. 이씨는 “정부 정책만 믿고 계속 서울에서 돌며 전세로 버텼던 사람들은 이제 덕양구보다 더 먼 지역을 알아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포·고양시로 몰린 강서구 30대
서울 강서구에서도 탈서울 흐름이 뚜렷했다. 2017~2020년 강서구 주민들은 4만7488명 중 2만8765명(60.6%)이 김포·고양·인천으로 순이동했다. 김포·고양·인천에서 강서구로 들어온 인원보다 강서에서 해당 지역으로 이주한 인원이 그만큼 많았다는 얘기다. 특히 김포시 2만565명, 고양시 5677명으로 두 곳으로 이동한 인원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강서구에서 김포로 이동한 30대는 6295명(30.6%)이었다. 그다음은 10세 미만(3247명), 40대(2852명) 등 순이었다. 마찬가지로 고양시로 이동도 30대 2059명(36.3%), 10세 미만(931명), 40대(920명) 등 순이었다. 10세 미만 자녀를 둔 30, 40대 직장인들이 대거 이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30, 40대는 마곡지구 개발 등으로 인한 집값 폭등을 피해 비교적 집값이 낮으면서도 서울과 가깝고 신축 아파트가 많아 주거여건도 보장되는 지역으로 이동한 것으로 분석됐다. 장 교수는 “경기 김포·고양 지역 신도시 개발로 인한 신규 물량의 대량 공급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슈&탐사1팀 김경택 문동성 구자창 박세원 기자 pty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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