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용동 전도사, 신앙의 양심 지키려 도청에 남아”

입력 2021-05-18 03:00

‘진정한 민주주의 승리를 보여줘야 한다. 역사의 심판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으리라.’

1980년 5월 마지막까지 전남도청에 남아 계엄군에 맞서다가 28세에 사망한 문용동(1952~1980·사진) 전도사가 생전 일기장에 쓴 문구다.

문용동전도사기념사업회 총무인 도주명(전주 온교회) 목사는 지난 13일 제41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 세미나에서 문 전도사의 생애 등을 발표했다.

전남 영암 출신의 문 전도사는 18세에 우연히 가게 된 광주제일교회 가나안농군학교에서 김용기 장로의 말씀에 감화를 받고 신앙 생활을 시작했다. 73년 호남신학교에 입학한 후 교회 야학에서 국어를 가르쳤다.

80년 5월을 맞이했을 때 그는 광주 상무대교회 전도사로 시무하고 있었다. 계엄군에 무자비하게 두들겨 맞은 시민을 구한 것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항쟁에 뛰어들었다.

시민군의 무기고 관리를 맡게 된 그는 계엄군 투입 하루 전인 5월 26일 도청에서 나오라는 누나와 친구들을 돌려보냈다. 당시 문 전도사는 “시민과 계엄군의 생명을 위해 폭발 위험이 있는 무기고를 끝까지 지키는 게 주님 종의 사명, 신앙의 양심이라고 생각한다. 죽으면 죽으리라”고 답했다고 한다. 자신에게 총을 겨누는 계엄군까지 위한 것이다. 27일 새벽 그는 양쪽 가슴, 오른쪽 손에 총탄 3발을 맞고 사망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 총회는 2016년 문 전도사를 순직자로 추서했다. 도 목사는 “문 전도사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끝까지 도청에 남았다. 복음 전파 중 사망한 게 아니라는 이유로 총회는 순교자 헌의안을 부결했지만 재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