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세이상 ⅓이 듣지 못하는 고통… TV볼륨 자꾸 키우면 검사를

입력 2021-05-18 04:05
국민일보는 국내 난청의 실태와 문제점을 짚어보는 ‘잘 들리나요?-난청, 늦기 전에 준비하자’ 기획을 7회에 걸쳐 게재한다. 증가하는 노화성 난청과 소음성 난청의 현황, 난청으로 인한 2차 피해, 정부 난청 정책의 난맥상을 살펴보고 바람직한 청각관리 방향 및 대안을 찾아본다.

게티이미지

경기도 광명에 사는 서모(89) 할머니는 40대부터 양쪽 귀의 청력을 조금씩 잃기 시작했다. 당시 “원인을 알 수 없고 못 고친다”는 의사 말에 40여년을 포기한 채 살아왔다. 월 30만원의 기초노인연금이 생계비의 전부인 서 할머니는 어려운 형편으로 200만~300만원대 보청기 구입은 꿈도 꾸지 못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할머니의 귀는 멀어져 지금은 대화가 힘들 정도로 나빠졌다. 듣지 못해 생기는 생활의 불편은 고스란히 할머니의 몫이다. 밤낮없이 TV소리를 최대로 키워야 해 이웃과 갈등을 빚거나 전화벨 소리를 듣지 못해 급한 연락을 받지 못할 때도 많다.

종종 횡단보도를 건너거나 길을 걸을 때 오토바이나 차에 부딪힐 뻔하는 등 위험천만한 상황에 맞닥뜨리기도 한다. 서 할머니는 “좁은 골목에서 오토바이가 큰 소리를 내고 지나가도 모른다”고 했다. 자연히 외출이 꺼려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혼자 지낸다.

지난 1월부터 서 할머니에게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광명시종합사회복지관 김두심 생활지원사는 “1주일에 두 번 안부 전화를 하고 안 받으면 직접 집에 찾아가서 확인하고 말동무도 돼 드린다”면서 “돌보는 13명의 독거 어르신 중 3명이 할머니처럼 귀가 거의 안 들리셔서 애로가 많다”고 전했다.

서 할머니는 최근에서야 복지관과 한 보청기업체의 주선으로 한쪽 귀의 보청기를 무료로 지원받게 됐다. 할머니의 ‘청력 역치(들을 수 있는 최소한의 소리 크기)’는 왼쪽 귀 75데시벨(dB), 오른쪽 귀 70dB 정도로 ‘중고도 난청’에 해당됐다. 정순옥 전문청능사는 “좀 더 일찍 보청기를 하셨으면 청력소실을 늦출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17일 의료계에 따르면 국내 65세 이상 노인의 약 3분의 1(30.6%)이 난청을 갖고 있는 걸로 추산됐다. 현재 노인 인구(2021년 4월 기준 860만명)에 대입하면 260만명에 해당된다. 분당서울대병원 이비인후과 최병윤 교수는 “연구나 조사마다 노인 난청 유병률에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학계에선 대체로 전체 노인의 30~40%가 난청을 갖고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노화성 난청은 내이(內耳·속귀)에 있는 달팽이관의 퇴화나 청신경의 이상으로 생기는 점진적인 청력 감소(감각신경성 난청)를 말한다. 주요 원인이 노화지만 유전적 요인, 소음 노출, 당뇨·고혈압 등 만성질환의 영향도 받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노년층에 한정돼 발생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청력 감소는 30대 정도부터 시작되고 50세 이후 서서히 진행돼 65세가 넘으면 본격적으로 노화성 난청이 나타난다. 보통 양쪽 귀에서 동시에 나타나고 초기에는 높은 음역대(4000헤르츠 이상)부터 청력이 떨어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중간 혹은 낮은 음역대(250~500헤르츠)까지 진행된다. 예를 들어 처음에는 근처에서 새가 지저귀는 소리나 전화벨 소리를 듣기가 어려워진다. 서울아산병원 이비인후과 강우석 교수는 “노화성 난청이 되면 말소리가 분명하게 들리지 않거나 작게 들린다. 이렇게 되면 말을 듣고 이해하기 힘들어진다”고 했다.


노화로 인한 난청은 회복될 수 없어 예방과 적극적인 보청기 착용 등 청각재활을 통해 진행을 늦추는 게 최선이다. 문제는 실제 보청기를 사용하는 노인들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 조사(복수 응답)에 따르면 노인들은 보청기 미보유 이유로 착용 불편(49.1%), 구입 및 관리 비용 부담(46.6%), 보청기 착용에 대한 부정적 인식(37.1%) 등을 꼽았다.

특히 정부의 보청기 급여 지원 범위가 제한적인 게 한몫한다. 보청기 착용이 필요한 중도 이상 난청 노인은 전체 노인(860만명)의 9.5%, 약 81만명가량으로 추산된다. 보청기 급여 지원이 가능한 전체 청각장애인 등록자(지난해 39만5000명) 중 65세 이상은 30만8296명(77.9%)이다. 즉 보청기기 필요한 노인의 절반을 훨씬 웃도는 인원이 비용 부담이나 사회적 시선 등을 이유로 보청기 착용을 꺼려하는 것이다. 이들은 일상에서 듣지 못하는 불편과 고통을 감수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대개 중고도 이상의 난청일 때 청각장애인 진단을 받을 수 있는데, 사실 고도(71~90dB)나 심도(91dB 이상)의 난청일 경우엔 보청기를 착용해도 별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고 말한다. 최병윤 교수는 “흔히 보청기는 아예 들리지 않을 때 사용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보청기는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남아있는 청력(잔청)이 있어야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했다. 실질적으로는 보청기 효과와 만족도가 가장 높은 중도 난청(특히 40~60dB)에 대한 보청기 지원이 더 필요하다는 얘기다.

서울 강남의 한 이비인후과 원장은 “보청기는 꼭 필요하지만 청각장애등급 기준에 부합되지 않거나 사회적 시선 등을 의식해 착용하지 않고 포기한 채 살아가는 ‘숨은 난청인’들이 등록장애인보다 7~8배 많다”면서 “보청기는 중도 이상 난청인에게 착용이 권고되지만 경도 난청 단계라도 조기에 착용하면 청각기관의 퇴화를 늦출 수 있다”고 말했다.

노화성 난청은 65세 미만이더라도 기준에 부합되면 진단된다. 최근 이처럼 노화성 난청의 연령대가 점차 낮아지고 있다. 10년 전 난청 진단을 받았으나 6년 전에서야 오른쪽 귀에 보청기를 맞춘 직장인 임모(57)씨는 “보청기를 끼면 왠지 귀머거리나 노인네 취급받는 것 같아 사용이 꺼려진다”고 했다. 인제의대 상계백병원 이비인후과 최정환 교수는 “초고령사회로 접어들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난청 인구가 점점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 만큼 난청인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도 바뀔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나이가 젊더라도 대화하는데 어려움이 느껴지거나 가족 등 주변에서 TV, 라디오 소리가 크다는 얘기를 자꾸 들으면 난청을 의심하고 청력검사를 받아보라”고 조언했다.

특별취재팀=민태원 의학전문기자, 최예슬 송경모 기자 twmin@kmib.co.kr

[난청, 늦기 전에 준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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