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차별 받는다고 생각 안 해요, 근데 군대 보상은 해줘야”

입력 2021-05-17 04:02
"대학 생활하면서 역차별 당한 경험은 없는 것 같아. 다만 뉴스를 보면 머지않아(?) 역차별 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 역차별이 사회 전반으로 넓혀져 가는 과정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긴 해."(23세, '보수정당 지지남')

"내 사회 경험에 비춰봤을 때 느낀 점은 분명히 기업은 남성을 선호한다는 것이었어. 뽑히고 나서 팀장님이나 파트장님이 아예 여자는 서류에서 다 떨어뜨렸다는 얘기를 하는 걸 듣고 굉장히 놀란 적도 있어. 회사 내에서도 육아는 당연히 여자 몫이 크다는 인식이 강해서 육아휴직을 남성이 쓰는 경우는 못 봤어. 그만큼 커리어 측면에서 여성이 손해 보는 경우가 많다는 거겠지."(29세, '남초회사직딩')


20대 남성들은 스스로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생각할까. ‘20대 남성도 기득권’이라는 주장은 어떻게 생각할까. 사회 전체가 ‘이대남’을 주목하지만, 정작 이대남의 속마음을 들을 기회는 많지 않았다. 국민일보는 20대 남성 10명과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 모여 오후 7시부터 3시간가량 속내를 들어봤다. 참여자는 방금 퇴근한 20대 후반 직장인부터 아직 진로를 정하지 못한 20대 초반의 ‘군미필’ 대학생까지 다양했다. 대화방 속 이름은 실명 대신 자신을 가장 잘 표현하는 별명으로 대체했다.

10명 중 8명 “여성 차별도 없어”


10명 중 8명은 역차별을 받는다고 여기지 않았다. 동시에 20대 여성이 받는 차별도 없다고 생각했다. 다만 개별사례에서 남성 역차별로 느낄 만한 게 있다고 답했다. 진로나 취업 관련 분야에서 특히 그랬다. 역차별을 느끼지 않는다고 답한 ‘대학원생’(28)은 “여성도 차별을 받는 상황이 분명히 존재할 거로 생각하고, 남자만 차별 당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는 대신 일상 속에서 남성도 차별을 받는다면서 “공대에 재학 중이고 공대 관련 정책으로 역차별이 생긴다는 얘기를 많이 듣고 있다”며 차별 사례로 ‘교수 및 공학인 여성 할당제’를 꼽았다.

역차별이 있다고 생각한다는 ‘미필걱정남’(23)은 “역차별이 만연하다기보다는 역차별이 없지는 않다고 생각한다”며 “여대에 있는 의대, 약대, 로스쿨은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경쟁에서 좀 더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10년차 요리사’(28)는 “일을 하면서 몇 번 역차별을 당해봤던 것 같다. 네가 남자니까 더 해라, 남자니까 안 쉬고 더할 수 있잖아, 같은 거”라고 말했다.

20대 초반 남성들은 20대 여성들이 차별받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기회의 평등을 누리지 못하는 경우는 없다는 것이다. ‘복학생 이대남’(24)은 “성별로 차별받는 20대 여성의 경험은 많이 줄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직 직장이나 사회에서 그런 차별이 존재하겠지만”이라고 했다. ‘로스쿨 준비생’(24)도 “철저한 능력주의 사회가 됐다고 생각한다. 특정 분야에서 요구하는 능력을 갖췄다면, 그곳으로 갈 수 있는 사회”라면서 “취업이든 진학이든 성별을 이유로 차별을 두진 않는다고 본다”고 말했다. 반면 여성 차별이 존재한다고 답한 20대 후반 남성 2명은 ‘여전히 여성이 사회에서 주류가 되지 못했다’고 얘기했다.

20대 후반 “남성, 아직 기득권”


‘20대 남성도 기득권’이라는 주장에 대한 공감도에서도 20대 초반과 후반은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20대 초반 남성들은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20대 후반은 대체로 “동의한다”고 답했다. ‘로스쿨 준비생’은 “20대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뭔가 실익이 있다는 걸 느껴본 적이 없다. 아르바이트 같은 경우에도 남자만 뽑는 곳이 있는 반면 여자만 뽑는 곳도 만만치 않게 많다”고 했다. ‘미필걱정남’도 “20대 남성이 기득권이라는 주장에 동의하기 매우 힘들다. 단순히 남성이 여성보다 기득권이라고 한다면 동의할 수 있지만, 졸업·입대·취업을 앞둔 내 입장에선 (그렇게 생각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20대 후반인 ‘남초회사직딩’은 “사회에서 20대 여성이 받는 차별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반대 성별인 20대 남성이 가지는 기회나 권력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막학기 석사준비생’(27)도 “기성세대 같이 행동하지 않는다고 해서 혜택을 안 받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남성이란 성별로 사회에 몸을 담는다면 기득권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페미니즘에 대한 질문에는 대부분 ‘성평등 추구’는 맞는다면서 그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만 ‘여성 이익만 내세우는 것 같다’거나 ‘남성 공격’에는 거부감을 보였다. 10명 중 7명은 “페미니즘이 여성우월주의는 아니다”고 했다. 이들은 “페미니즘은 성평등을 추구하는 것이지 특정 성별을 위한 운동 혹은 사상은 아니라 생각”(‘복학생 이대남’)하면서 “여전히 해소해야 할 차별들은 존재한다고 생각”(‘남초회사직딩’)했다.

반면 ‘대학원생’은 남녀 모두가 불리한 점을 가지고 있다고 전제하면서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이들 얘기를 들어보면 한 번도 남성이 불리한 걸 말하지 않고, 여성이 불리한 것만 얘기한다”고 불만을 표했다. 이어 “페미니즘은 성평등이 아닌 여성 이득을 위해서만 있는 집단이라는 생각이 든다. 성평등을 추구한다면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굳이 사용해야 되나 싶은 생각”이라고 했다.

‘한국 남자’의 줄임말로, 주로 한국 남성을 비하하는 데 사용되는 ‘한남’이라는 용어에는 대부분 거부감을 보였다. “한국 남자를 싸잡아 비난하는 데 쓰이는 말이라 ‘김치녀’라는 말과 유사하다”(‘미필걱정남’)는 것이다. 이들은 ‘남혐’의 상징 메갈리아와 ‘여혐’을 벌여온 일베가 똑같다고 지적했다.

군대는 “경력 단절” “2년 증발”


하나 같이 군대에 대해선 ‘시간 낭비’라고 봤다. 가장 큰 불평등으로 군대를 꼽았다. 보상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꼭 가산점 제도여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남초회사직딩’과 ‘소시생’(24)은 “군 가산점이 아니라도 보상은 필요하다”고 했다. ‘보수정당 지지남’은 “군 가산점 부활보다 더 실질적 (보상)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필걱정남’은 “군 가산점을 폐지한 이유 중 하나였던 ‘모든 군필남성에게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건 동의한다. 군 가산점 제도엔 회의적이지만, 길게는 1년9개월이라는 시간에 상응하는 포괄적 보상은 꼭 필요하다”고 했다.

이대남들의 고민은 대체로 비슷했다. 20대 초반에게 진로·취업이 가장 큰 고민이라면, 20대 후반은 부동산이라는 게 차이였다. ‘복학생 이대남’은 “무엇을 해야 할지. 공시(공무원 시험)를 해야 하나, NCS(국가직무능력표준·주로 공기업 입사시험을 지칭)를 할까. 아니면 대학원으로 도망칠까. 어떻게 먹고살아야 할지 고민이 가장 크다”고 털어놨다. ‘보수정당 지지남’도 “부모를 부양해야 하고, 소중한 사람들도 잘 가꿔야 하고, 이상과 현실의 적당한 중심점도 잡아야만 하니 어떤 곳으로 나아가는 게 현명하냐는 고민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대학원생’은 “이제 곧 30대를 바라보고 있어서 결혼을 해야 하고 가정도 꾸려야 할 텐데 과연 직장 근처에, 원하는 곳에 집을 잘 마련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제일 크다. ‘내 집 마련’ 하나 제대로 못 한 남자가 결혼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끊이질 않는다”고 했다. ‘남초회사직딩’도 “언제 돈을 모아서 언제 집을 살까…. 그게 가장 큰 고민”이라고 말했다.

“모든 청년 위한 정책 내 달라”


‘20대 남성을 위한 정책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엔 답변이 나뉘었다. “남성뿐 아니라 20대 전체를 위한 정책 자체가 부족하다”는 의견에는 대부분 공감을 표시했다.

‘막학기 석사준비생’은 “남성에게 부족한 정책이 있다고 생각은 안 한다”면서도 “20대를 위한 정책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복학생 이대남’도 “20대를 위한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는 정당은 늘 군소정당인 것 같고, 주류정당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정책을 내놓고 있지 못한 것 같다”고 평했다. ‘미필걱정남’ 역시 “청년이라는 범주에서 진행되는 정책이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체감 가능한 건 한국장학재단의 국가장학금 정도?”라고 지적했다.

대화를 마무리하면서 ‘청년 정책을 쏟아내는 정치인들에게 한마디 해 달라’고 청했다. 이들은 ‘20대 남성에게만 유리한 정책은 싫으니, 모든 청년을 위한 정책을 내 달라’고 했다. 20대 남성을 위한다면서 여성이나 다른 세대에 피해를 주는 건 싫다는 것이다.

‘대학생’(24)은 “20대를 위한 정책이 있으면 좋겠지만, 특정 성별에 집중되거나 다른 세대에 피해 주지 않는 선에서 정책이 만들어지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남초회사직딩’도 “이대남뿐만 아니라 20대 청년에게 도움 되는 정책이 무엇인지 고민해줬으면”이라고 전했다.

안명진 기자 김승연 김아현 양재영 황금주 인턴기자 amj@kmib.co.kr

[이대남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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