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용인소방서 소속 고(故) 신진규(33) 소방교가 성남의 농기계 창고 화재 현장으로 출동하다 사망한 이튿날인 지난 10일. 전국의 소방관들이 하나둘 안내 계좌로 조의금을 입금했다. 앞서 소방청은 전국 6만여명의 소방관에게 ‘신 소방교의 순직조의금을 모으고 있습니다’라는 휴대전화 메시지를 보냈다. 계급별로 1만~3만원을 24일까지 납부토록 안내했다. 16일 소방청에 따르면 이렇게 모인 돈은 5억원이 넘을 것으로 보인다.
순직한 신 소방교의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대다수 동료가 십시일반 조의금을 보태는 데는 ‘동료 대신 살았다’는 미안함이 크게 작용한 때문이다. 서울 지역의 A소방관은 “목숨을 빚진 기분이 든다”며 “슬픔보다 미안함이 가장 크다”고 말했다. 강원 지역 B소방관은 “다른 사람들은 순직 소식에 단순히 안타까운 감정을 느끼겠지만, 소방관들은 내가 죽은 것 같은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이 같은 위험직무순직(직무상 발생한 재해가 사망의 직접 원인이 된 경우) 조의금 모금이 소방청 내부 문화로 자리 잡은 건 2007년부터다. 그전에는 개별적으로 모금을 진행하다 2007년부터 기부금 단체인 대한소방공제회에서 모은 후 전달한다. 소방관이 공제회에 입금하면 기부금 형태로 유족에게 돌아간다. 소속 소방관 전원이 모금에 동참하는 소방서가 많아 월급에서 차감하는 형태로 모금에 나서는 곳도 있다. 이 같은 모금에는 통상 전국 소방관 99%가 동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동료 소방관들은 신 소방교의 유족과 자신의 가족을 겹쳐본다. 2017년 화재 현장에서 동료를 잃었던 B소방관은 “죽음의 문턱에 있다고 느낀 순간, 가장 먼저 생각난 건 가족이었다”며 “신 소방교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마음보다 유족을 위해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전북 지역의 C소방관은 “나도 같은 상황이면 동료들이 모은 순직 조의금이 내 가족에게 전달될 것이란 생각이 든다”고 전했다.
이들이 조직적인 모금에 나서는 배경에는 국가에서 나오는 순직보상금으로는 충분한 예우가 되지 않는다는 현실적인 이유가 놓여 있다. 7월 출범을 앞둔 소방공무원노조 관계자는 “가장이 사망했을 경우 유족은 생활고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며 “신 소방교처럼 현장 출동이 잦은 20, 30대의 젊은 소방관이 순직 위험도 큰 상황인데, 이제 막 가정을 꾸린 단계여서 유족에게 남겨질 재산도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순직보상금은 2006년 ‘공무원 전체 기준소득 월평균 금액’의 44.2배에서 2018년(공무원 재해보상법) 45배로 소폭 상향하는 데 그쳤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순직보상금이 현실적인 수준에 미치지 못해 자발적으로 내는 조의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며 “순직 후 남은 유족의 어려움을 들을 수 있는 순직보상 상담창구를 만드는 등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