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하나만 잘하면 안될까요

입력 2021-05-17 04:07

사회가 빠르게 변하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부족한 점을 보완하는 데 시간을 소모하는 대신 가진 강점을 최대로 끌어올리는 데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게 낫다고도 한다. 하지만 일인다역을 맡는 소규모 사업자는 단점 하나가 사업을 실패로 이끌 수 있어 그러기 어렵다. 패션 디자이너도 그렇다. 재능이 있어서 자기만의 디자인을 만들어내느라 고군분투하던 사람들은 힘을 잃고, 디자인과 마케팅 모두를 잘 해내는 사람만 살아남고 있다.

패션 브랜드는 눈에 띄는 차이가 꼭 필요하다. 또 많이 팔릴 제품을 적절한 타이밍과 가격에 내놓아야 한다. 그래서 디자인과 머천다이징 둘 다 중요하다. 그런데 이 둘은 한쪽을 강화하면 다른 한쪽이 약해지는, 묘하게 다른 방향의 힘이다. 새롭고 좋은 옷을 만들면 당연히 잘 팔릴 것 같지만 참신한 디자인의 옷은 일상적으로 입기 어려워 적게 팔린다. 반면에 많은 사람이 선택할 만한 옷을 만들다 보면 다른 옷과 차이가 없어지는 딜레마에 빠진다. 가격을 적절히 맞추는 것도 어려워 좋은 원단에 장식도 많이 넣다 보면 원가가 비싸지고, 원가를 낮추려고 저렴한 원단을 쓰고 장식을 줄이면 더 이상 특별해 보이지 않는다.

두 가지 힘의 조화는 오랜 고민거리여서 기업들은 여러 방법을 시도하고 있지만 개인이 두 역량을 고루 갖추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디자인을 잘하는 사람도 머천다이징은 노력해도 뜻대로 잘 안 되곤 한다. 더 많이 팔릴 만한 옷을 만들라는 조언을 따르다 보니 딱히 성과도 없으면서 차별성만 잃어 이도저도 아닌 브랜드가 돼버렸다는 절망 섞인 푸념도 종종 들었다. 그래서 루이비통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은 잘 팔릴 궁리는 마케터들에게 맡기고 디자이너는 새로운 디자인 하나만 생각하도록 독려했다고 한다. 1인 창업자는 물건에 대한 안목과 생산, 유통, SNS, 인사에 재무관리까지 모두 잘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보통 어느 한쪽에 치우친 사람들이니 갈 길이 참 멀다.

윤소정 패션마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