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국군 아저씨가 살아 있다면 나타나서 빨갱이 누명이라도 벗겨주십시오.”
1993년 6월 텔레비전에 출연한 김모(당시 76세) 할머니가 애원했다. 1950년 한국전쟁 때 부역자로 낙인찍혀 20여년 옥살이를 한 할머니가 무죄를 입증해줄 증인을 찾는다고 하자 신문도 일제히 김 할머니의 사연을 보도했다.
김 할머니가 “누명을 썼다”는 사건은 한국전쟁 때인 1950년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 종로구에 살던 김 할머니는 영문도 모른 채 우익청년단체에 의해 서울형무소로 끌려갔다. ‘50년 7월 북한이 서울을 점령했던 때 인민군에게 이웃을 밀고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검찰은 같은 해 11월 ‘비상사태하의범죄처벌에관한특별조치령’ 위반으로 김 할머니를 재판에 넘겼다.
특별조치령이 시행되던 당시 재판은 지금과 달랐다. 부역행위를 했다는 의심을 받는 경우 증거설명이 생략될 수 있었고 단심제였다. 김 할머니는 기소된 지 한 달 만에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바로 형이 확정됐다. 할머니는 20여년을 감옥에서 지내야 했고, 형무소에 끌려갈 때 5살이던 아들은 전쟁고아 수용시설로 보내졌다.
43년 만에 방송을 통해 알려진 할머니의 사연은 앞서 인정된 혐의와 전혀 달랐다. 김 할머니는 50년 7월 서울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전쟁이 터진 지 며칠 안 돼 인민군에 쫓기던 국군 김모 일병을 집에 숨겨줬는데 이웃이 인민군에 이 사실을 신고해 곧바로 경기 양주로 피신했다는 것이다. 서울 수복 직후인 50년 10월 할머니는 서울로 돌아왔으나 할머니를 신고한 이웃이 본인 잘못이 들통날까봐 할머니를 부역자로 무고했다는 게 김 할머니의 얘기였다.
우연히 방송을 본 60대의 김 일병은 할머니가 말한 국군 아저씨가 본인임을 바로 알았다. 그는 곧장 서울로 올라가 김 할머니와 만났다. 김 할머니는 그간 보관해왔던 재판기록과 김 일병의 증언을 토대로 94년 1000여쪽에 달하는 재심청구서를 만들었다. 어릴 때 헤어졌다가 수십년 만에 어머니를 찾은 김 할머니의 아들이 청구서를 직접 법원에 냈다. 하지만 법원은 재심 청구를 기각했다. 할머니의 주장을 인정할 자료가 부족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김 할머니는 2010년 4월 세상을 떠났다.
2017년 김 할머니의 아들은 변호사 사무실을 다시 찾았다. 온통 한자인 기록을 재검토하는 과정에서 어머니가 불법 체포됐다는 사실이 새로 발견됐다. 장경욱 변호사는 “재심은 같은 사유로 중복 청구할 수 없기 때문에 새로운 사유를 앞세워 다시 재심을 청구했다”고 설명했다.
법원은 김 할머니가 법원에서 발부한 영장 없이 감금됐음을 인정해 2019년 두 번째 재심을 개시하기로 결정했다. 검찰은 지난달 법원에 낸 의견서에서 김 할머니에게 무죄를 구형했다. 다만 1950년 재판 당시 이웃이 한 불리한 증언의 증거능력은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할머니 측은 헌법이 보장하는 적법절차에 의한 재판이 아니었던 만큼 증거능력을 배제해야 한다는 반박의견을 냈다.
장 변호사는 “김 할머니 같은 분이 한두 명이 아닐 것”이라며 “특별조치령 위반으로 처벌받은 이들에 대해 정부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앞서 ‘특별조치령 위반으로 확정판결을 받은 이들은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는 내용의 특별법이 1960년 시행됐지만 이듬해 5·16 군사쿠데타 이후 폐지됐다. 김 할머니의 재심 선고는 14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