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남성혐오(남혐) 아닙니까?” ‘젠더 이슈’는 여성들의 문제라고 인식돼 왔던 한국 사회에서 남성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4·7 재보선 이후 20대를 주축으로 남성에 대한 역차별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트위터 등 SNS에서는 일부 용어들이 남성에 대한 ‘혐오 표현’이라는 문제 제기도 잇따르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도 ‘남성 문제의 시대’가 열리는 것일까. 5회에 걸쳐 ‘남혐’의 실체와 ‘이십대남자’(이대남)의 진짜 문제, 돌고 도는 젠더 갈등의 고리 등을 짚어본다.
최근 온라인상에서 ‘여성혐오’(여혐)에 비해 덜 사용되던 ‘남혐’이나 ‘남성차별’ 같은 용어의 사용이 급증했다. 소셜 빅데이터 분석 사이트 ‘썸트렌드’에서 올해 1월 1일부터 5월 11일까지 커뮤니티, 인스타그램, 블로그, 뉴스, 트위터 등에서 사용된 ‘남성혐오’ 언급량 조사 결과가 이를 잘 보여준다.
남혐이란 용어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사용 빈도수가 높지 않았다. 지난해 온라인상에서 여혐 언급량은 162만3252건에 달했지만 남혐 언급량은 36만1104건에 불과했다. 하지만 올해 통계를 보면 남혐은 33만2928건, 여혐은 54만9568건이 언급됐다. 5월 11일 현재 이미 지난해 전체 언급량에 육박한 것이다.
지난 1~2월 2만여건에 머물던 남혐 언급량은 3월 8만6319건, 4월 12만184건으로 껑충 뛰었다. 특히 재보선 직후인 4월 12일 남혐이 여혐보다 높게 언급되는 역전 현상이 일어난 뒤 남혐이 더 많이 언급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네이버 데이터랩의 검색어 분석 결과도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 남성혐오, 남혐이란 검색어가 4월 재보선 이후 급등했다. 검색이 많은 시점을 100으로 기준 삼았을 때 4월 초까지만 해도 5 안팎에 그치던 숫자는 재보선 이후 부쩍 늘어나 20일엔 53, 남혐 온라인 게시물 논란이 불거진 5월 3일엔 100을 기록했다. 카카오에서도 유사한 트렌드를 확인할 수 있었다.
10, 20대가 즐겨보는 웹툰에서도 남혐 논란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네이버 웹툰 ‘바른연애 길잡이’ 속 장면 곳곳에 남성을 비하하는 의성어 등이 사용됐다는 주장이 나왔다. 남초(남성이 여성보다 많은 상태)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해당 웹툰에 대한 평점 테러 공격이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보통 9점대 후반의 평점을 기록했던 해당 웹툰의 최근 회차 콘텐츠는 평점이 5~8점대로 떨어졌다. 이후 다른 웹툰에서도 유사한 논란이 크고 작게 벌어졌다.
온라인에서 남혐 이미지나 용어 사용을 색출하는 움직임이 커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 1일 GS25의 캠핑 행사 상품 광고에 여성 커뮤니티 ‘메갈리아’를 상징하는 이미지를 담고 있다며 논란이 제기된 뒤 남초 커뮤니티 등에서는 홍보물에서 비슷한 이미지를 찾아내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청년층, 특히 ‘이대남’으로 명명된 20대 남성들이 말하는 ‘남성혐오’(남혐)의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 남혐에 대한 관심이 곧 ‘남성에 대한 차별이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을까.
엄밀히 말해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이대남은 차별당하는 약자나 소수자 그룹으로 묶여본 적이 없었다. 이들을 대표할 만한 단체나 이론적 근거가 없는 상황에서 이대남의 생각은 파편적으로 소비돼온 측면이 크다.
정치권에서는 상황과 입맛에 따라 이대남을 활용하는 모습이다. 재보선 이후 보수 정치인들은 이대남의 목소리를 페미니즘을 옹호해 온 진보 진영과 문재인정부에 대한 비판이나 반발로 규정하고 있다.
야당의 청년 정치인 이준석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대표적이다. 그는 출구조사 결과 20대 남성의 72.5%가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를 찍어준 선거 결과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이 2030 남성의 표 결집력을 과소평가하고 여성주의에만 올인했다”는 점을 이유로 댄다. 하지만 정작 선거 이후 국민의힘에선 진짜 20대 청년들의 문제에 대해 이렇다 할 정책적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당장 1년 앞으로 다가온 대선을 앞두고 한 표가 아쉬운 민주당의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다. 민주당에선 ‘군가산점제 부활’ ‘여성징병제’ ‘여성가족부 폐지’ 등을 앞세우고 있다. 이대남 목소리의 실체와 상관없이 정치권에서 이들을 하나의 대표적인 목소리처럼 묶어 젠더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현재 이대남의 목소리와 남혐 표현 논란의 실체를 제대로 들여다보고 한국 사회가 대처해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 온라인에서 제기된 남혐 논란을 촉발한 ‘손가락 그림’이나 ‘허버허버’ 같은 용어는 특정 여초 커뮤니티 메갈리아에 연원이 있다는 점에서 남성들의 불만을 산 측면이 있다.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사회 전반으로 페미니즘이 확산되면서 이에 대해 부정적 경험을 갖게 된 20대 남성들이 늘어난 것도 일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는 현실에서 성별에 따른 차별과 불이익을 보고, 폭력·범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협과 불안감을 느끼는 ‘여혐’과는 맥락상 차이가 있다는 분석이다.
그렇더라도 한국 사회가 갈수록 대학 진학과 취업을 둘러싼 경쟁이 치열해지고, 그 과정에서 공정한 기회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지면서 20대 남성들이 상대적으로 역차별을 받는다고 느끼는 상황이 늘고 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12일 “20대 남성들의 불만을 남혐의 실체가 있다고까지 볼 수 있느냐에 대한 이견은 있을 수 있지만 이들의 불만엔 근거가 있다”며 “재보선을 계기로 억눌려 있던 남성들의 목소리가 표출되는 것은 이제는 자신들의 목소리도 들어 달라는 취지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사회 구조적으로 양극화와 일자리 문제가 심화되면서 20대 남성들이 기회를 잃는 것에 대한 위기감과 불안감을 크게 느끼는 현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손희정 경희대 비교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는 “이대남의 목소리를 구체적으로 들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실제 2030 남성들의 삶이 어떠한지 고민을 안 하면서 반페미니즘 정서에 기대는 방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이현 박구인 박상은 기자 2hyun@kmibco.kr
[이대남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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