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킹이 불러온 영화같은 혼돈… 미 동남부 ‘기름 사재기’ 전쟁

입력 2021-05-14 04:04
한 여성이 12일(현지시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벤슨의 한 고속도로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사재기하고 있다. 차 트렁크에도 휘발유통이 가득 차 있는 모습이다. AFP연합뉴스

미국 동남부 지역 주유소들에서 석유제품이 바닥나고 있다. 동부 지역에서 소비되는 연료의 45%를 공급하는 ‘콜로니얼 파이프라인’이 지난 7일(현지시간) ‘랜섬웨어’(돈을 요구하는 악성 프로그램) 공격을 받은 여파다. 영화에서 나오던 이야기가 현실이 된 것이다. AP통신은 “이번 해킹 공격은 다시 한번 미국 주요 기반시설의 취약성에 대한 우려를 고조시켰다”고 지적했다.

콜로니얼 파이프라인은 텍사스주에서 뉴저지주까지 5500마일(8850㎞)에 달하는 송유관을 통해 디젤유·가스·정제, 제품·항공유 등을 운송하는 회사다.

이번 해킹 공격으로 가장 피해가 큰 지역은 노스캐롤라이나·조지아·버지니아 3개주다. 노스캐롤라이나주 주유소 가운데 28%가 사재기로 석유제품이 바닥났다고 실시간 주유소 정보안내 회사 가스버디를 인용해 뉴욕타임스(NYT)가 12일 보도했다. NYT는 조지아주와 버지니아주에서도 17% 이상의 주유소에서 기름이 동났다고 전했다.

특히 대도시의 석유 부족 사태는 더욱 심각하다. 가스버디의 수석분석가 패트릭 드 한은 노스캐롤라이나주의 샬럿·롤리·그린빌 지역 70% 이상의 주유소에서 석유제품이 완전히 바닥났고, 버지니아주 노포크와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는 60%에 달하는 주유소에서 기름이 말랐다고 밝혔다. 이 3개주는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기름값도 폭등하고 있다. 미국 자동차협회(AAA)는 전국 평균 휘발유가격은 갤런당 3.008달러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AP통신은 갤런당 3달러를 넘은 것은 2016년 이후 처음이라고 전했다.

사이버 공격을 당한 콜로니얼 파이프라인은 현시점에서 해커들에게 돈을 지불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대신 사이버 보안회사 맨디언트의 도움으로 백업 시스템에서 데이터들을 복구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콜로니얼 파이프라인은 지난 10일부터 일부 라인의 작업을 수동으로 재개했다. 또 이번 주말에는 대부분의 작업을 재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콜로니얼 파이프라인에 랜섬웨어 공격을 가한 단체로 ‘다크사이드’라는 신생 해커조직을 지목했다. AP통신은 다크사이드가 콜로니얼 파이프라인에 요구한 금액은 50만 달러(5억6000만원)에서 500만 달러(56억원) 이상일 수 있다고 맨디언트를 인용해 추정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12일 “앞으로 24시간 이내에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며 “우리는 (이 상황을) 제어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미 언론들은 다크사이드와 러시아 간 연관성을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다크사이드는 동유럽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러시아에 기반이 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도했다. NBC방송은 한발 더 나아가 러시아 범죄조직이 이번 사이버 공격에 책임이 있을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바이든 대통령도 지난 10일 이번 해킹 사태와 관련해 “극도로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면서 강력 대응을 시사했다. 그러면서 러시아를 겨냥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해커들의 랜섬웨어가 러시아에 있다는 증거는 있다”면서 “러시아는 이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일부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미 송유관 운영업체에 대한 사이버 공격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