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성공의 기준을 숫자와 크기로 판단한다. 교회 역시 부흥을 측정할 때 비슷한 기준을 따른다. 출석 교인 수가 많은 곳과 다수의 프로그램 운용하고, 헌금 규모가 커진 곳을 부흥했다고 보는 건 이제 불문율이 됐다. 그러나 ‘정서적으로 건강한 제자’(두란노)의 저자 피터 스카지로는 이 논리를 정면 반박한다.
“성경이 말하는 성공은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이 돼 그분이 원하는 일을 하나님의 방식과 시간표대로 하는 것이다. 이는 교회나 사역단체가 수적으로 성장하고도 실상은 실패할 수 있다는 의미다.” ‘크고 풍성한 게 곧 축복받은 것’이라고 믿는 이들이라면 의아하게 여길 만한 주장이다.
저자는 73개국 이상의 이민자로 구성된 다민족 교회 뉴라이프펠로십교회를 미국 뉴욕 퀸스에 설립한 목회자이자 작가다. 그는 숫자에만 집착하다 가정과 교회가 공중분해될 위기를 겪었던 경험을 토대로 이 책을 썼다.
프린스턴신학대와 고든콘웰신학대에서 수학한 저자는 졸업 후 인종·문화·성 차별이 없는 신앙 공동체를 꿈꾸며 1987년 뉴욕에 교회를 세웠다. 45명으로 시작한 교인은 6년 만에 영어 예배 출석자 400명, 스페인어 예배 출석자 250명으로 늘어났다. 부흥의 기쁨도 잠시, 이듬해인 94년 스페인어 사역자가 성도 200명을 데리고 떠나면서 교회는 분열에 휩싸인다. 설상가상으로 아내는 “사역에만 몰두하는 남편을 보기 힘들다”며 교회를 떠나겠다는 선언을 한다. 책은 2년여간 방황하다 사역을 내려놓은 저자가 자신을 돌아보며 깨진 부부관계와 영성, 교회를 다시 세우는 여정을 그린다.
저자는 처음엔 자신의 실패를 납득할 수 없었다. 그는 수많은 부흥강사가 책과 강의에서 말한 성공 공식을 빠짐없이 실천했다. 하나같이 문제가 완전히 사라진, 완벽한 교회를 약속하는 내용이었다. 자신이 “하나님 나라를 위한 열심으로 천하를 얻고도 자기 영혼을 잃은 자”(막 8:36)가 됐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돌이켜보니 삶과 목회가 나락에 떨어진 근본 원인은 자신에게 있었다. 복음 전파에는 열심이었지만 정작 나 자신과 가족, 성도에겐 무관심했다. 하나님을 위한다며 일했지만 정작 주님과 함께하는 시간은 없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이들에겐 전혀 배우려 들지 않았으며, 숫자를 맹신하는 그릇된 성공에 경도됐다.
모순된 자기 모습을 직시한 직후부터 저자 부부는 20여년 간 수도원 운동과 영성, 가족체계이론과 대인관계 신경생물학, 사막 교부의 영성 등을 다방면으로 연구한다. 기존의 제자훈련과는 달리, 인생에 근원적인 변화를 끌어내는 성경적 성장이란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다. 이 과정에서 저자 부부가 고안한 것이 책 이름과 동일한 ‘정서적으로 건강한 제자훈련’(EHD·Emotionally Healthy Discipleship)이다.
EHD가 강조하는 7가지 특성은 이것이다. ‘외적 활동 전에 내적 삶을 갖추라’ ‘십자가 없는 성공에 집착하지 마라’ ‘한계라는 하나님의 선물을 받아들여라’ ‘상실은 성숙의 필수 관문이다’ ‘누구보다 사람을 사랑하라’ ‘과거의 힘을 깨뜨리라’ ‘약함으로 하나님 일을 이루라’다. 일견 당연한 소리 같지만, 숫자를 신봉하던 그리스도인에겐 급진적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솔직히 우리 역시 알게 모르게 외부 성과와 인기에 집착하며 한계와 상실, 취약함을 저주로 보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저자는 이 7가지 특성을 체득해 가정과 교회의 분열을 점진적으로 해결했고, 전 세계 교회에 자신의 경험을 나누고 있다. 그는 EHD를 그리스도인이 실천할 때, 자신뿐 아니라 가정과 교회, 주변의 비그리스도인도 변화될 수 있다고 본다. 특히 목회자와 평신도 지도자의 변화를 요구한다. “교회는 지도자가 성숙한 만큼만 성숙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단기간에 뚝딱 이룰 수 있는 건 아니다. 평균 7~10년이 필요한 방법이다. 당장 해법을 구하는 이들에게 저자는 말한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다리고, 자신에 대해 인내심을 가지라. 정서적으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면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내가 직접 경험한 말이니 확신해도 좋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