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급하지만, 2020년이 동학개미의 해였다면 2021년은 코인개미 혹은 코인러의 해로 기록되지 않을까. 올해 처음으로 코인 투자를 시작한 이들이 1분기에만 250만명에 달하고 가상화폐 하루 거래량은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을 합친 것보다 커졌다.
경제학자인 박정호 명지대 특임교수는 “국민 10명 중 한 명이 가상화폐에 투자하고 있고, 수십조원이 오가는 시장으로 자리잡았다”며 “가상자산 시장 대응은 정부가 더이상 뒤로 미룰 수 없는 어젠다가 됐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특히 “제도권에 편입되지 않은 시장에는 항상 너무 많은 악당이 있다”며 지금과 같은 제도 정비 이전의 과도기에 가상화폐 투자 피해자들이 양산돼 자칫 사회적 문제로 비화될 가능성을 우려했다.
-한국이 미국, 일본과 함께 가상화폐 최대 거래국이 됐다. 왜 이렇게 뜨거운 건가. 지금의 가상화폐 시장은 거품인가.
“가상화폐 시장이 발달하고 있는 나라 중 우리가 가장 과열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가 경제 규모와 인구 대비 거래량이나 1일 거래 횟수가 가장 많다. 거품이 있고, 우려된다. 정부가 제대로 가이드해주지 않으면 선의의 피해자들이 생길 수 있다.”
-선의의 피해자라면.
“지금의 가상화폐 시장이 공정한 시장이냐고 묻는다면 절대 아니라고 하겠다. 거래소 계좌가 전부 실명 인증이 되는 게 아니다. 한 사람이 아이디를 몇 개씩 갖고 시세를 올릴 수 있고, 주식시장에서는 사라진 통정거래(매수자와 매도자가 미리 가격을 정해놓고 일정 시간에 서로 매매하는 것) 같은 구태의연한 전략이 횡행한다. 정부는 공정하지 않은 시장임을 알려야 하고, 공정한 시장으로 바꿔야 한다고 판단하면 주저해서는 안 된다.”
-하루 수십 번씩 오르내리는 큰 변동성 때문에 가상화폐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은 여전하다.
“제도권 금융상품 중 선물 옵션은 짧은 기간에 이익이나 손해를 40배 이상 볼 수 있는 상품이다. 하지만 투기가 아니라 ‘위험성이 높은 상품’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가상화폐를 선물 옵션보다 더 위험한 상품으로 분류할지 아닐지 정하지 않은 게 문제이고, 위험한 데 투자하는 건 본인 책임이다.”
-올해 코인시장에 새로 뛰어든 투자자 중 60%가 2030세대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만나시는데, 젊은 층이 과도하게 가상화폐 투자에 몰두한다는 우려를 어떻게 생각하나.
“2030이 앞날이 보이지 않아 가상화폐라는 투전판에 미래를 걸었다는 건 동의하기 어렵다. 이들은 디지털 네이티브다. 창업 입문이라는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사업계획서를 제출하게 했는데, 15~20%가 가상화폐를 바탕으로 한 비즈니스를 들고 왔다. 단순히 코인을 상장해 대박을 노린다는 학생은 없었다. 이더리움처럼 시스템 형태로 가상화폐를 구상하거나 NFT(대체불가능토큰)를 활용해 온라인 창작물 관리를 대행하고 판매하는 서비스를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가상화폐를 보는 시야의 깊이와 넓이가 윗세대와는 다르다.”
-암호화폐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이 찬반으로 팽팽하게 나뉜다. 경제학자들은 제도권 편입에 반대하고, 컴퓨터 공학자들은 4차산업의 핵심기술인 블록체인과 떼어낼 수 없으므로 적극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쪽은 화폐와 자산의 시각으로 보고, 한쪽은 새로운 시스템과 비즈니스 모델로 다르게 보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을 가상화폐라 부르고 화폐처럼 사용하는 부분이 있으니 전통적인 경제학자들이 보기엔 가격 변동성이 지나쳐 화폐의 기능을 할 수 없다고 하는 거다. 반대로 엔지니어나 공학자들은 블록체인을 중심으로 한 미래지향적 생태계가 생겼다고 본다.”
-가상화폐나 암호화폐 대신 ‘가상자산’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그래서인가.
“지난 3월 개정된 특정금융정보법에서 정부도 가상자산이라는 표현을 썼다. 가상화폐의 미래를 묻는다면 저 역시 화폐로 기능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답하겠다. 하지만 가상화폐가 아닌 가상자산 시장이 유망하냐고 묻는다면 발전 가능성이 꽤 있어 보인다.”
-채굴량이 제한된 비트코인의 가격 상승은 어느 정도 수긍이 된다. 비트코인을 제외한 알트코인의 미래는 어떤가.
“‘디지털 금’으로 불리는 비트코인은 가치저장수단인 가상화폐로 실효성을 갖추는 데 유리한 게 맞다. 그러나 가상자산이 다양한 서비스와 결부되는 추세인데, 그런 측면에서는 비트코인의 미래가 밝지는 않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비교하는 말씀인데.
“비트코인은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신원 미상의 개발자가 사라진 상태다. 이더리움은 블록체인 기술을 비즈니스 모델에 녹이는 과정에서 이용자 수가 늘기 시작했고, 이더리움 2.0을 통해 발전시키고 있다. 누군가 만들어놓고 사라져버린 시스템과 계속 수정 보완하면서 마케팅과 프로모션을 진행하는 것 중 어느 쪽을 주목해야 할까.”
-가상화폐 거래소마다 코인 가격이 다른 것과 외국보다 한국에서 유독 가격이 높은 ‘김치 프리미엄’은 해소돼야 하지 않나.
“200개 가까운 거래소의 가상자산을 단일 시세로 맞추려면 기준을 어떻게 삼느냐의 문제가 있다. 제일 높은 데로 맞추면 나머지가 무임승차 하는 거고, 중간값으로 맞추면 자산이 깎이는 쪽을 어떻게 설득해야 할까. 김치 프리미엄을 정리하려면 외국과 프로토콜을 맞춰야 하는데, 국가마다 가상자산에 대한 입장이 달라 거래소의 시세 일치보다 훨씬 늦게 해결되지 않을까 싶다.”
-암호화폐가 유명인들의 말 한마디에 몸값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도 불안한 부분이다. ‘도지코인 아빠’를 자처하는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의 언행을 어떻게 봐야 하나.
“약간의 도덕적 해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주식시장에서 그렇게 호재성 악재성 발언을 하면서 매매했다면 쇠고랑을 찰 일이다. 거기에 부화뇌동해 투자하는 개인들도 맞는 건지 모르겠다.”
-독일과 일본은 가상화폐를 법률상 금융상품으로 인정했고, 캐나다는 비트코인 관련 상장지수펀드(ETF)를 승인했다. 가상자산이 점점 제도권으로 편입되는 추세 아닌가.
“제도권으로 수용해야 하는 건 자명한데, 우리는 컨트롤타워를 기획재정부가 맡을지, 금융위원회가 맡을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맡을지 정해지지도 않은 상황이다.”
-정부는 9월 말까지 코인거래소가 은행에서 실명 확인 가능한 계좌를 받아오지 않으면 거래소를 폐쇄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시세조종이나 환치기 같은 불법행위와 투자자 피해가 발생했을 때 적용할 법이 없는 상황이지 않나.
“거래소 등록만으로는 발등의 불을 끌 수 없다. 가상자산도 주식처럼 안정적으로 거래하고 투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국은 그동안 국가 주도로 경제 사회 체계를 만들어왔다. 그런데 유독 가상자산에만 국가가 시장에 끼어드는 게 아니라고 한다면, 부동산 시장에는 왜 그렇게 개입했나. 가상화폐 투자수익에 세금부터 내라는 것도 황당하다. 이익이 있는 곳에 과세가 있다는 원칙에 동의하지만, 과세하겠다면 국가가 시스템 관리 책임을 져야하지 않나.”
-정부의 정책과 규제 방향은 어떠해야 할까.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법률이나 정책에서 금지한 것만 아니면 모두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로 가는 게 맞다. 유연하게 혁신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제조업 다음 단계가 금융의 시대라는 데 이견은 없을 것이다. 전통적인 금융시장과 달리 앞으로 더 우월한 생태계를 갖고 등장하는 새로운 세력들이 있을 것이다. 전기자동차 시장에서 기존 자동차 회사들이 후순위가 되고 테슬라가 선도기업이 된 것처럼. 그 과정에서 한국 기업들도 부각되기를 바란다.”
-전문가들은 가상화폐도 펀드처럼 적립식으로 투자하거나, 잃어도 되는 돈이라 생각하고 자산의 5~10%만 투자하라고 조언하는데.
“많은 자산을 넣는 건 말리고 싶다. 제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주식과 가상화폐의 비율은 97대 3이다. 거래소가 등록하려면 은행을 통해야 하는데, 2~3년 만에 수조원을 만지는 회사로 급성장하면서 체계를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은행이 요구하는 서류들을 제출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보수적인 투자자라면 아직은 조심하는 게 나을 수 있다.”
-그러잖아도 등록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할 거래소들이 미리 ‘먹튀’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정부가 이런 과도기에 일어난 사건·사고들을 어떻게 수습할 것인지도 얘기해야 한다. 가상화폐 말고도 우리 당대에 또 다른 (17세기 네덜란드에서 투기 파동을 빚었던) 튤립이, 또 다른 뭔가가 등장할 수 있다. 그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기준을 세울 필요가 있다.”
-9월까지 가상화폐를 둘러싸고 여러 사건이 벌어질 수 있겠다.
“피싱, 사기, 횡령… 상상을 초월할 거다. 가상화폐라는 미래지향적 시장에 대한 관심과 진흥도 중요하고, 투자자 보호라는 또 다른 토끼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권혜숙 인터뷰전문기자 hskw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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