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취 압박 받는 이성윤… 박범계 “기소·직무배제는 별도 절차”

입력 2021-05-12 04:02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이 지검장은 평소 관용차를 타고 지하주차장으로 출근했지만 이날은 청사 앞에 내려 정문 현관을 통해 들어갔다. 연합뉴스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신청한 검찰수사심의위원회에서 압도적인 기소 권고가 나오면서 반격 카드가 오히려 ‘자충수’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검찰 안팎에서는 “피고인 서울중앙지검장은 상상하기 어렵다”며 법무부가 직무배제 등 조치를 진행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기소와 직무배제는 별도의 절차”라며 구체적인 답변은 피했다.

이 지검장은 11일 오전 8시50분쯤 관용차를 타고 서울중앙지검으로 정상 출근했다. 그는 평소 지하주차장으로 출근했지만 취재진이 주차장 입구에 몰려 있자 정문 현관으로 들어갔다. 이 지검장은 보고를 받는 등 통상적인 업무를 본 것으로 전해졌다. 대검은 수사팀의 기소 의견을 승인했고 수원지검은 이르면 12일 이 지검장을 기소할 방침이다.

전날 수사심의위에서는 외부 전문가 13명 중 8명이 기소 의견을 냈다. 수사심의위가 기소 정당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거취 압박은 더 거세질 가능성이 있다. 통상 검찰 고위 간부가 비위 혐의를 받을 경우 직무배제 등 인사 조치되는 게 일반적이었다.

2017년 이른바 ‘돈봉투 만찬’ 사건이 논란이 되자 문재인 대통령은 당시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과 안태근 법무부 감찰국장에 대해 즉시 감찰을 지시했었다. 이들은 다음 날 곧바로 사의를 표명했다. 다만 감찰 대상자는 사직 처리할 수 없다는 규정상 사표가 수리되진 않았다. 이들은 고검 차장검사로 전보 조치된 후 기소됐고, 돈봉투 사건은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 지검장은 검찰 수사가 부당하다고 주장하는 만큼 스스로 사의를 표명하지는 않을 전망이다. 사의를 표명해도 공무원 비위사건 처리규정상 기소될 경우 의원면직(사직)될 수 없다. 검찰 안팎에서는 이 지검장이 기소되면 징계절차가 진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현직 부장검사는 “피고인 신분인 서울중앙지검장이 사건 결재를 받는다는 건 너무 이상하다”고 말했다.

수사심의위 권고로 이 지검장의 직무유지 명분이 더 줄어들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앞서 한동훈 검사장을 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정진웅 광주지검 차장검사는 직무배제 되지 않았다.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은 정 차장검사에 대한 기소가 적절했는지 들여다봐야 한다는 이유를 들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이 지검장의 경우 수사가 잘못됐다고 트집잡기도 어렵게 된 것 아니냐”며 “심의위가 오히려 퇴로를 막은 것 같다” 말했다.

박 장관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과 관련된 수사과정에 전반적으로 짚어야 할 대목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검찰의 절차적 정의를 바로 세우는 시범케이스가 왜 하필 김학의 사건이냐고 되물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한 검찰 수사에 의도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직무배제 조치를 하지 않겠다는 의도를 내비친 것으로도 풀이된다. 박 장관은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건에서는 절차적 정의를 강조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는 “둘을 비교할 수 있는 사건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