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당헌에 선거 180일 전으로 규정된 대선후보 선출 시기를 연기해야 한다는 경선연기론을 두고 여권 내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여권 1위 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는 물론 추격 중인 이낙연 전 대표, 정세균 전 국무총리 등 각 주자의 셈법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탓이다.
여당 내에서는 후보를 먼저 확정해 대세론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의견과 후보를 최대한 늦게 선출해 컨벤션 효과를 누리면서 야당의 파상공세도 피해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경선 연기론을 주장하는 이들은 상대 정당보다 후보를 먼저 선출할 경우 후보가 상대의 공세에 노출되는 기간이 길어지고, 이벤트 직후 지지율이 상승하는 ‘컨벤션 효과’를 누릴 수 없다는 점을 명분으로 든다.
공개적으로 경선 연기론을 꺼냈던 전재수 의원은 11일도 CBS 라디오에서 “야당은 윤석열도 있고 안철수 카드도 있다”며 “저쪽은 내년 1월까지 후보 경선을 진행할 텐데 우리만 먼저 뽑아놓으면 후보 선출 과정에서 압도당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도 2002년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일찌감치 선발됐지만, 당 안팎의 ‘후보 흔들기’로 한때 지지율이 10%대로 하락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대선에서 이기긴 했지만 이 같은 리스크를 감수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이다.
현재 각 대선 주자들은 당 지도부가 경선 관련 논란을 조속히 정리해야 한다며 공을 넘긴 상태다. 정세균 전 총리는 “후보들은 주어진 룰에 맞춰 최선을 다하면 된다”면서도 “과거엔 지도부가 후보자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조율하는 프로세스를 거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 전 대표도 전날 “당이 이른 시일 내에 정리를 해주기 바란다”고 했다.
그러나 이 지사 측은 경선을 일정대로 진행해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하다. 이 지사 측은 “야권의 일정과 상관없이 우리는 여당으로서 정책·입법 역량을 보여주면 된다”고 말했다.
과거 사례를 보면 1992년 14대 대선 이후 2012년 18대 대선까지 후보를 먼저 내세운 정당이 대권을 거머쥔 것으로 나타났다. 경선연기 불가론을 펼치는 측에서는 “일찍 선출됐다고 불리해질 정도의 후보라면 그런 후보는 대선 후보로서의 경쟁력이 없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들은 대표적인 예로 17대 대선을 언급한다. 당시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는 2007년 10월 후보로 선출됐지만, 두 달 먼저 후보로 선출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에게 패했다. 여권 관계자는 “선거는 인물과 선거구도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라며 “선출 시기가 결과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고 말했다.
15대 대선에서도 1997년 5월 선출된 김대중 후보가 7월 선출된 이회창 후보를 누르고 대선에서 승리했다. 18대 대선 역시 2012년 8월 선출된 박근혜 후보가 9월 확정된 문재인 후보를 대선에서 눌렀다. 19대 대선은 문재인 후보가 홍준표 후보보다 4일 늦게 선출됐지만 탄핵 국면을 감안하면 후보 선출 시기가 중요치 않았다는 평가가 다수다.
박재현 기자 jhy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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