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돼. 안 바꿔줘. 바꿀 생각 없어. 빨리 돌아가.”
천종호(56) 부산지방법원 부장판사가 범죄를 저지른 뒤 선처를 바라는 비행 청소년들에게 호통치는 장면이다. ‘호통판사’란 별명의 천 판사는 2010년부터 8년간 소년재판을 맡아 1만2000여명의 소년범을 재판했다. 민사재판부로 옮긴 지금도 청소년을 위한 축구단을 운영하거나 커피 바리스타 교육을 하는 등 아이들의 인성함양이나 자립을 지원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가난이 일반적 현상이던 1970년대 부산 아미동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천 판사는 초등학생때 준비물이 없어 학교를 결석하고, 500원하던 육성회비를 내지 못해 수업시간에 쫓겨나기도 했으며, 점심 도시락을 챙겨가지 못해 수돗물로 배를 채워야 할 만큼 가난했다. 그런데도 학교 성적이 괜찮아 학교를 떠나지는 않았다.
천 판사는 운동신경이나 예술적 재능이 없을뿐더러 예·체능 교육을 받아본 적도 없다고 했다. 거기다 적색과 녹색이 헷갈릴 때가 있는 ‘적록 색약’이어서 어릴 적부터 예·체능 계열이나 이공계열로 진학하는 꿈은 생각지도 못했다. 때문에 문과 계열을 선택했고, 문과의 우수학생들 대부분이 희망하는 법조인이 되기로 했다. 가난한 가정형편 때문에 고등학교 진학할 때는 공고에 진학하라는 권고를 받거나 대학에 진학할 때는 사범대나 교대로 가라는 권유를 받았지만, 어릴 적 꿈이던 법조인을 포기할 수가 없어 부산대 법대에 진학했다.
천 판사는 7전 8기 도전 끝에 1994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1997년 부산지방법원에서 판사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2010년 창원지방법원 소년부로 가면서 인생 항로가 완전히 바뀌었다.
“우연히 창원지법에서 소년사건을 맡은 이후로 위기 청소년들의 열악한 삶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당시 2~3주에 1번씩 소년보호재판이 열렸는데 하루 6시간, 많을 때는 200명의 아이를 재판했습니다. 평균 100명을 기준으로 1명당 재판 시간이 3분에 불과해 일명 ‘컵라면 재판’이라고도 불렸습니다. 1명당 1시간씩 할애하는 일본의 소년보호재판과 비교하면 얼마나 후진적입니까. 아이들이 왜 범행을 저질렀는지 들어보고 스스로 반성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는 게 제일 중요한데 시간이 없다 보니 처분 내리기에 바빴어요. 법정 안에서도 법정 밖에서도 보호받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대변자가 되는 게 제 소명이라 생각했습니다.”
이때부터 천 판사의 법정은 호통치는 소리로 넘쳐났다. 비행청소년을 법정에서 무섭게 혼내거나 선처해 용서한다고 해서 재비행을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란 걸 누구보다도 천 판사는 잘 알고 있다. 그는 “법정에서 무섭게 혼내는 이유는 다시는 법정에 서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천 판사는 비행청소년들의 재범 원인 중 가장 큰 요소가 환경적 요인이라고 봤다. 천 판사의 법정에서 호된 호통을 당하고, 상담기관을 거쳐 새 출발을 다짐하는 아이들이 많다. 하지만 가정, 교우관계, 학업 이탈 등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들이 재범에 이르게 한다. 그래서 소년재판의 경우 판결보다는 사후 비행 관리에 더욱 마음을 쓰인다고 했다.
그는 올해 3월 써낸 저서 ‘내가 만난 소년에 대하여’에서 사회의 관심을 촉구했다. “소년의 비행은 소년의 것이 아니라 사회의 것입니다. 누구도 겪어서는 안 되는 방임과 학대의 그늘에 놓인 아이들, 벼랑 끝에 몰려 법이 아니면 어찌할 수 없는 지경에 처한 소년들이지만, 작은 도움과 격려 한마디에 삶을 새로 빚어냈습니다.”
천 판사는 학교폭력도 단순히 아이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폭력성을 낮추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봤다. 학교 밖에서 벌어지는 좁은 의미의 청소년비행은 절도, 강도, 성매매(원조교제) 등 대부분 생계형이다. 이들이 비행에서 멀어지게 하기 위해서는 복지혜택이 빠짐없이 이뤄지도록 해야 하고, 학업에서 낙오한 아이들에게는 좌절과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현재 민간인이 운영하는 격리시설(6호 처분 기관)이 대전 이남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경범죄를 저지른 소년범은 보호자가 잘 관리해 재범을 막으라는 취지로 ‘1호 처분’을 하는데 가정이 붕괴한 아이들의 경우 갈 곳이 없다 보니 소년부 판사들이 처분을 두고 어려움을 겪었다.
천 판사는 이 문제를 청소년전문가와 상의하면서 당시에는 생소했던 ‘사법형 그룹홈’ 제도를 알게 되고, 경남에 사법형 그룹홈을 조성하고자 차를 몰고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고 설득작업을 펼쳐 2010년 11월 사법형 그룹홈 1호를 탄생시켰다. 이름하여 ‘청소년회복센터’. 그 후 약 20여개의 청소년회복센터가 개설됐고, 2016년 청소년복지법의 개정을 통해 ‘청소년회복지원시설’로 제도화됐으며, 2019년 1월부터는 국가의 예산 지원을 받게 됐다. 그때 고생으로 이명(tinnitus)을 얻었지만, 그는 청소년들을 위해 의미 있는 세월을 보낸 ‘훈장’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천 판사는 최근 소년법 개정 여론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소년법이나 형법이 개정되더라도 사건의 피해자나 모든 국민을 완전히 만족시킬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형사미성년 나이가 13세 미만으로 개정된다고 하더라도 12세의 소년이 렌터카 도주치사 사건 등과 같은 사건을 저지른다면 또다시 법 개정을 주장하는 여론이 형성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 충분한 여론수렴과 신중한 논의를 거쳐 처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부산=글·사진 윤일선 기자 news828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