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일본에서 연극으로 만들어진다. 미국에서 드라마화가 진행 중인 가운데 일본에서 무대화가 결정되며 식지 않는 인기와 화제성을 드러냈다.
‘기생충’의 투자·배급사 CJ ENM은 11일 “일본에서 재일교포 영화 제작자인 이봉우 맨시즈 엔터테인먼트 대표가 ‘기생충’을 무대화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 대표는 과거 영화 제작 빛 배급사인 시네콰논을 이끌며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1993년) ‘박치기’(2005년) ‘훌라걸즈’(2006년) 등을 제작해 일본 아카데미상을 받았다. 한국 영화가 일본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1994년 ‘서편제’를 시작으로 ‘쉬리’ ‘오아시스’ ‘공동경비구역 JSA’ 등을 수입해 일본 시장에 소개했다.
‘기생충’의 연극화 추진 소식은 지난 1월 일본에서 발매된 무크지 ‘한국영화 궁극 가이드’에 포함된 이 대표의 인터뷰로 처음 알려졌다. 지난해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 이후 봉 감독과 만나 연극화를 제안한 이 대표는 공연권을 가진 CJ ENM과 최근 계약을 마무리했다.
이 대표가 영화의 무대화를 추진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9년 도쿄 신국립극장에서 연극 버전 ‘박치기’를 선보였다. 연극 ‘기생충’은 애초 내년 개막을 계획했지만 코로나19의 장기화에 따라 내후년인 2023년 개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HBO에서 제작 중인 드라마 ‘기생충’은 리메이크가 아니라 6시간 분량의 스핀오프로 선보인다. 영화 ‘빅쇼트’로 2016년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은 아담 맥케이 감독이 봉 감독과 함께 제작 총괄을 맡았다. 연극 ‘기생충’은 드라마와 달리 영화의 구성과 캐릭터를 충실히 따르는 리메이크가 될 전망이다.
이 대표는 앞서 인터뷰에서 “연극의 무대는 1990년대 일본으로 바뀔 것”이라 밝혔다. 극 중 배경의 변화 외에 연극 ‘기생충’의 윤곽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일본에서 영화계와 연극계를 오가며 활동하는 유명 작가가 각색을 맡는 것으로 알려졌다.
봉 감독은 여러 인터뷰에서 ‘기생충’을 희곡으로 먼저 구상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극 중 공간을 2~3개의 세트로 압축할 수 있는 만큼 연극에도 어울린다. 봉 감독은 국내 영화 전문지와 인터뷰에선 더 구체적인 뒷이야기를 공개했다. 그는 “2013년 (초기 착안 단계에서) 부유한 가족과 가난한 가족의 만남이라는 스토리라인을 만든 뒤 존경하는 연출가 박근형 선생님이 이를 토대로 희곡을 써서 무대로 올리고, 나는 영화로 찍는 안을 생각해 본 적 있다. 실제로 박 선생님을 만나기도 했다”고 말했다. 박근형은 연극 ‘청춘예찬’ ‘경숙이 경숙 아버지’ ‘너무 놀라지 마라’ ‘만주전선’ 등을 발표한 국내 대표적 극작가 겸 연출가다.
봉 감독은 연극에 대한 애정을 꾸준히 드러내 왔다. 대표작 중 하나인 ‘살인의 추억’(2003년)은 연극 ‘날 보러 와요’를 원작으로 삼았다. 하지만 2015년 이후 본격적으로 스토리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카메라 위치를 생각하는 자신을 깨달은 뒤 희곡을 포기하고 영화 장르에 맞게 썼다고 털어놓았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