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검찰개혁 말하는 사건… 지휘 빙자한 수사무마 없어야”

입력 2021-05-11 04:02
양창수 검찰수사심의위원장이 10일 검찰수사심의위원회가 열린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수사심의위는 이날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 금지 사건과 관련해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의 기소 여부를 논의했다. 연합뉴스

검찰은 시민사회의 기소 권고를 얻어낸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수사 무마 의혹 사건을 ‘진정한 검찰개혁 방향과 관련된 사건’이라 규정한다. 일선 검사들의 정당한 소신을 꺾는 일이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검찰수사심의위원회의 결론도 이러한 수사팀의 문제의식에 동의한 결과로 풀이된다. 이 지검장 측은 “어떠한 외압도 행사한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지만 시민들의 결론은 ‘즉시 기소’였다.

10일 대검찰청에서 열린 이 지검장의 수사심의위에서 수원지검 형사3부(부장검사 이정섭) 수사팀은 “이번 사건은 소신을 지키며 일하는 검사들이 진정 원하는 검찰개혁의 방향과 관련돼 있다”며 이 지검장을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펼친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팀은 이 지검장이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으로 일하던 2019년 6월 19일 수원지검 안양지청의 ‘이규원 검사 비위 발생 보고’를 받은 뒤 안양지청이 관련 수사를 진행하지 못하게 했다고 심의위원들에게 설명했다. 수사팀은 “수사 지휘를 빙자한 수사 무마는 앞으로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지검장이 받은 안양지청 보고에는 이 검사가 2019년 3월 김 전 차관 출금 승인을 요청할 때 존재하지 않는 사건번호를 기재한 사실 등이 담겼다. 수사팀은 이후 이 지검장이 당시 안양지청 차장검사와 통화한 사실을 파악했다. 안양지청은 2019년 7월 4일 “더 이상의 진행 계획 없음”이라는 수사결과를 보고하고 사건을 종결했다. 하지만 1년여 뒤인 지난 1월 공익신고에 따라 검찰 수사가 재개됐고 이규원 검사가 지난달 기소됐다.

스스로 소집을 요청한 수사심의위가 기소 권고를 내리면서 이 지검장은 타격을 입게 됐다. 이 지검장 측은 당시 사건 처리 과정이 문무일 전 검찰총장에게 보고됐다며 수사가 계속돼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수사심의위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수사팀은 문 전 총장과 관련해 필요한 확인은 끝났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수사 이후 이 지검장은 검찰 내부에서 신망을 크게 잃었다. 고위 검사인 그가 수사팀의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을 때,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수사권을 주장하고 김진욱 공수처장에게 면담을 요청할 때, 수사심의위를 열어 달라고 요청할 때마다 검찰 구성원들은 아쉬움을 나타냈다.

공익신고에 따른 사건 재배당으로 시작된 이번 수사는 여러 각도에서 다양한 의미가 있다. 국민적 공분을 감안하면 김 전 차관 출금의 불법성을 따지는 일 자체가 부차적이라는 반응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나쁜 죄인이라 해도 적법절차로 처벌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데 방점을 찍는 법조인들도 많았다. 검찰 내부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지휘냐 외압이냐’의 문제가 반복됐다는 반응도 있었다. 수사팀은 ‘지휘를 빙자한 무마’라고 판단했다.

이번 사건은 수원지검과 공수처 사이를 오갔다. 이 과정에서 ‘수사는 검찰이 하더라도 기소 여부는 공수처가 재차 판단하는지’를 놓고 검찰과 공수처가 반대 입장을 보였다. 수사심의위가 검찰에 기소를 권고한 만큼 공수처가 이번 사건 기소권을 주장할 명분이 약해졌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 지검장은 지난 3월 윤석열 전 검찰총장 사퇴 후 유력 검찰총장 후보로 꼽혔다. 하지만 ‘피고인 검찰총장’ 리스크가 부각되면서 결국 최종 후보군에 들지 못했다.

이경원 나성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