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오를대로 올랐는데… 문 대통령, ‘부동산 실패’ 인정

입력 2021-05-11 00:03
시민들이 서울 중구 서울역 대합실에 마련된 TV를 통해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4주년 특별연설을 시청하고 있다. 이한결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4주년 특별연설에서 그동안 부동산 정책의 실패를 인정하고, 무주택 실수요자 등의 내 집 마련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정책 보완을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1년 전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 “강력한 대책을 끝없이 내놓겠다”고 공언했던 것과는 180도 달라진 모습이다. 이에 따라 무주택자에 대한 대출 규제 완화와 1주택자의 세 부담을 완화하는 등의 부동산 보완책 마련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문 대통령은 10일 특별연설에서 “부동산 정책의 성과는 부동산 가격 안정이라는 결과로 나타나야 하는데 그것을 이루지 못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급격한 가격 상승이 있었던 지역들은 가격이 (취임 전 수준으로) 원상회복돼야 한다”고 자신했던 것과는 온도 차가 크다. 당시 문 대통령은 “정부는 지금 대책이 실효를 다했다 하면 보다 강력한 대책을 끝없이 내놓을 것”이라며 규제를 통해 부동산 시장 안정을 이뤄내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실제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부동산 시장이 과열될 조짐을 보이자 정부와 여당은 초강력 규제인 6·17, 7·10 대책과 임대차 3법을 밀어붙였다.

하지만 시장 상황은 정부·여당 기대와 거꾸로 갔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문 대통령 취임 시기인 2017년 5월보다 지난달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46.12%나 뛴 것으로 집계됐다. 서울 아파트 전셋값도 4년 새 평균 20.81% 올랐다. 문 대통령이 이날 “정말 부동산만큼은 정부가 할 말이 없는 상황이 됐다”고 고개를 숙인 배경이다.

문 대통령은 “무주택 서민, 신혼부부, 청년들이 내 집 마련의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실수요자의 부담을 완화하는 다양한 정책적 지원을 확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이 ‘내 집 마련의 꿈’을 공개석상에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정부는 서민 주거 안정을 내세우며 공공임대주택 확대에 속도를 냈을 뿐 내 집 마련에 대해서는 수요 억제를 이유로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오히려 투기과열지구 등 규제지역 내 주택을 살 때는 무주택자에게도 예외 없이 집값의 40%만 대출을 허용하는 등 강력한 규제를 일삼았다. 이는 내 집 마련의 사다리가 끊길 것을 우려한 무주택 실수요층 매수세가 중저가 아파트로 쏠리면서 지난해 말 ‘노도강’(노원구·도봉구·강북구) 등의 아파트 가격을 폭등케 하는 부작용을 야기했다.

문 대통령이 정책 보완을 공식화하면서 당정 간 규제 완화 논의도 조만간 결론이 날 전망이다. 현재 정부와 여당은 무주택자에 대한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이나 총부채상환비율(DTI) 상향 조정과 대출규제 적용 주택 가격 기준선을 6억원에서 9억원으로 올리는 방안 등을 논의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부동산 전문가는 “이제라도 정책 방향을 수정한 것은 잘한 일이지만 이미 집값이 너무 오른 상황에서 실수요자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잘 모르겠다”고 평가했다.

세종=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