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여왕 사촌 “푸틴과 만남 주선” 돈 요구하다 들통

입력 2021-05-11 04:09
AP연합뉴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사촌인 켄트 공자(公子) 마이클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남을 주선하는 대가로 돈을 요구한 사실이 9일(현지시간) 폭로됐다. 한국인 사업가로 위장한 기자들이 복수의 영국 왕실 인사를 상대로 함정 취재를 벌였는데 여기에 마이클 공자가 속아 넘어간 것이다.

외신에 따르면 영국 채널4 방송의 탐사보도 프로그램 ‘디스패치스’와 일간 타임스의 자매지 선데이타임스 취재진은 ‘하우스 오브 해동’이라는 이름의 한국 회사 경영진으로 위장하고 영국 왕실 인사 5명에게 접근했다. 영국 왕실 인사를 뒷배 삼아 러시아 고위층과 인맥을 쌓고 싶으니 협조해 달라는 제안이었다.

이 미끼를 문 사람이 마이클 공자였다. 디스패치스와 선데이타임스가 공개한 화상회의 영상을 보면, 한국인 사업가로 위장한 취재진은 마이클 공자에게 “영국 왕실의 일원으로서 우리 회사를 보증한다는 내용의 연설 영상을 제작해주면 20만 달러를 지불하겠다”고 제안했다. 이에 마이클 공자는 “아주 훌륭하고 관대한 제안”이라고 화답했다.

함께 화상회의에 참석한 레딩 후작 사이먼 아이작스는 마이클 공자가 “여왕 폐하의 비공식 러시아 대사”라며 푸틴 대통령과 연결고리를 놔줄 수 있다고 말했다. 아이작스는 “일이 비밀리에 진행됐으면 한다. 마이클 공자가 푸틴 대통령과의 관계를 사업에 활용한다는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길 바라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마이클 공자는 엘리자베스 2세의 사촌으로서 왕실 행사에 자주 얼굴을 비췄던 인물이다. 모계 쪽으로 러시아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의 후손이기도 하다. 마이클 공자 본인도 러시아어에 능통하며 러시아 관련 사업을 오래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009년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전 러시아 대통령으로부터 우정훈장을 받기도 했다.

마이클 공자 측 대변인은 공식 성명을 통해 “마이클 공자는 푸틴 대통령과 특별한 관계에 있지 않다”며 “두 사람은 2003년에 마지막으로 만났을 뿐이다. 이후 푸틴 대통령이나 러시아 대통령실과 접촉한 사실이 없다”고 해명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