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주시 선덕여고 3학년인 이수진양은 무대감독의 꿈을 키우고 있다. 방송국 예능 피디와 무대감독 사이에서 고민해오다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마음을 굳혔다. 고1 때인 2019년 여름, 방탄소년단 공연을 보러 갔다가 우연히 무대 뒤쪽을 구경한 것이 계기였다. 무대 연출진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각종 돌발 상황을 예측하며 대책을 공유하고 있었는데 이 모습에 매료됐다고 한다. 이양은 “감독으로 보이는 분이 ‘이럴 때는 이렇게 하고, 저럴 때는 저렇게 하고’라며 곳곳을 살피고 다녔는데 ‘멋진 무대 하나를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선 저렇게 노력하는구나’라고 감탄하며 동경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양은 요즘 ‘영화의 이해’라는 수업에 몰두하고 있다. 평일의 정규 수업시간이 아닌 토요일과 일요일에 진행되지만 매번 기다려지는 수업이다. 무대감독과는 결이 다르지만 영화 세트도 무대와 비슷하다고 생각해 참여하게 됐다. 영화 ‘반드시 잡는다’ ‘기묘한 가족’ 등의 제작자인 엄주영 ㈜씨네주 대표로부터 배우기 때문에 더욱 특별한 수업이다.
엄 대표가 들려주는 현장 얘기는 의욕을 북돋아 준다고 했다. 최근 학교폭력에 연루된 여배우가 영화에서 하차하면서 모든 장면을 새로 촬영했던 일화, 이를 위해 투자자를 다시 설득하며 겪었던 난감함, 영화계에서 이 일을 계기로 배우 캐스팅 시 학교폭력 연루 여부를 고려하는 것 등 눈이 번쩍 떠지는 얘기들이 많았다. 이양은 “몰입할 수밖에 없는 시간이다. 토·일요일 수업이 피곤하지 않다면 거짓이겠지만 괜찮다”고 말했다.
지난 6일 찾은 선덕여고는 교육부가 주목하는 학교다. 고교학점제 선도학교인 이 학교에서는 두 가지 측면에서 혁신이 일어나고 있다. 먼저 온라인 공동교육과정이다. 고교학점제를 도입하려면 학생들의 다양한 수업 수요를 충족해주는 인프라가 중요하다. 특히 적은 수의 학생이 신청하는 수업의 경우 일선 학교 차원에서 가르칠 사람을 찾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 신청 학생이 많지 않은 과목의 수강 학생을 모아 원격으로 가르치는 게 온라인 공동교육과정이다.
선덕여고는 여기에 더해 학교 밖 전문가들을 활용하고 있다. 학교 밖 전문가들을 통해 프로의 세계와 교실 수업을 잇는 도전을 하고 있다. 온라인이어서 서울에 있는 엄 대표 같은 유명 영화 제작자도, 미국에서 일하고 있는 정보통신기술 전문가가 참여할 수 있다.
스포츠 마케팅 분야를 전공하고 싶은 박지민양도 프로의 세계를 맛보고 있다. 유현주 SKT 스마트사업본부 매니저가 가르치는 ‘실무자가 들려주는 4차 산업혁명 이해’ 수업을 듣고 있다. 미국에 거주하는 유 매니저와 선덕여고 등 고교 11곳의 학생 11명이 화상에서 만나고 있다. 수요일 모든 수업이 끝난 저녁 시간과 토요일 오전에 스마트기기를 켜고 책상에 앉아야 하지만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자율주행 자동차 빅데이터 같은 내용을 전문가에게 직접 배울 수 있다.
박양은 만족스럽다고 했다. 박양은 “대형 스포츠 브랜드에서 일하고 싶어 스포츠 마케팅 전공을 생각하고 있다. 이 분야에도 4차 산업혁명 기술이 도입될 것이어서 수업이 무척 흥미롭다”며 “주로 4차 산업혁명 관련 동영상을 선생님과 함께 보고 토론하는 수업인데 최근에 접한 계산대 없는 무인점포가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선덕여고는 두 수업 외에도 ‘야 너두 마케터! 알기 쉬운 홍보 기획의 세계’란 이름의 커뮤니케이션 수업, ‘미디어 커뮤니케이션의 이해’란 수업을 온라인 공동교육과정 수업으로 진행하고 있다. 커뮤니케이션 수업은 현업에 있는 박인정 프리랜서 마케터(국어국문학 전공자)가, 미디어 커뮤니케이션의 이해는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류봉균 국어 교사가 맡고 있다. ‘고급생명과학 사용설명서’ ‘동아시아에서의 한국의 위치와 세계전략’까지 합하면 온라인 공동교육과정으로 6개 수업이 운영 중이다.
학생들에게는 부족해 보였다. 이양은 “2학년 국어수업 연극 시간에 로미오와 줄리엣을 각색해 무대에 올려봤는데 무대에 대해서 배울 수 있어 좋았다”며 “그래서 무대연출 수업을 만들어 달라고 학교에 요청했지만 전교에서 저 포함 두 명이어서 개설되지 않았다. 안될 거라고 예상은 했었지만 막상 개설되지 않으니까 많이 아쉬웠다. 후배들은 그런 기회를 많이 누렸으면 한다”고 말했다.
강환수 선덕여고 교무기획부장은 “학생들에게 수업 하나라도 더 열어주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경주 같은 중소도시에선) 강사 구하기가 어렵다. 대구와 부산에서 구해보려고 알아보지만 강사료가 낮아 잘 오지 않는다”며 “온라인 공동교육과정은 공간 제약이 없어 유용하다. 정부 차원에서 강사 풀을 풍부하게 구성해 학교에 제공하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류봉균 교사는 “학교와 교사가 아닌 학생 입장에서 교육을 바라봤으면 한다. 학생이 공부하고 싶은데 교사가 가르치기 어렵다면 당연히 학교 밖에서 구해 와야 한다”며 “외부 전문가들이 기록·평가를 힘들어하고 학생에 대한 이해가 불충분하면 신입 교사 교육하듯 교육하면 된다. 학교 교사만으로는 학점제를 제대로 도입하기 어렵다. 학교 밖 전문가들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주=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
[미래교육 대전환 프로젝트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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