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코인 열차의 행복은 선착순

입력 2021-05-11 04:06

1989년 개봉한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는 당시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그럼에도 영화 속 주인공들이 어엿한 중년이 된 최근까지도 우리 젊은이들은 여전히 행복은 성적순이라는 세뇌를 당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요즘 들어 행복에 대한 새로운 자각이 일어나고 있다. 아이들의 장래 희망 1위 직업이 ‘건물주’라는 씁쓸한 소식도 들려온다. 바야흐로 행복은 재산순인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어쩌면 어른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행복은 재산순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당시에는 부를 얻기 위한 가장 확률 높은 방법이 명문 대학에 진학해 좋은 직장을 얻는 것이라 믿고 자녀들에게 행복은 성적순이라는 믿음을 주입시켰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세상은 빠르게 변했다. 아무리 좋은 직장을 얻어 허리띠를 졸라매고 월급을 저축해도 집값은 더 빠르게 올라 내 집 마련의 꿈은 오히려 멀어져만 간다. 그렇게 오늘날의 행복은 부모의 능력순, 재산순인 것으로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러던 찰나 2030세대들에게 한줄기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주식시장에서 타오르던 들불이 이제는 코인시장으로 옮겨와 천상의 행복으로 오르는 사다리를 비춰주고 있다. 그들은 코인 열차에 올라타 열광하며 사다리를 오른다. 부유한 부모의 은덕을 받지 못한 맨손의 청춘들도 마침내 스스로 행복을 쟁취할 길이 열렸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다는 굳건한 믿음을 갖게 해준 기성세대는 그들을 나무랄 자격이 없다. 이 와중에 열차에는 과적경고등이 켜졌다. 너도나도 올라타다 보면 그 무게를 못 이기고 한순간에 추락할 수 있음은 자명하다. 안타깝게도 지금 그들에게 경고등 따위는 안중에 없다. 열차가 추락하기 전에 남들보다 먼저 그곳에 도착해 내리면 된다는 불변의 진리를 따른다. 결국 천상으로 오르는 코인 열차의 행복은 선착순이다.

제도권에서는 암호화폐를 금융자산으로 인정해야 하는지와 함께 내재적 가치가 존재하느냐 아니냐에 관한 논쟁이 뜨겁다. 하지만 이것은 핵심이 아니다. 내재적 가치가 엄연히 존재하는 자산에도 투기는 이뤄진다. 투기 열풍으로 실제 가치보다 가격이 오를 때 거품은 부풀어 오르고 종국에는 터지게 된다. 급등락을 반복하는 코인 가격의 행태는 설령 내재적 가치가 존재하더라도 실제 가치를 아무도 정확히 평가하지 못하고 있음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지금보다 높을 수도 있고 낮을 수도 있다. 그래서 위험하다.

“잘못된 길로 가면 어른들이 이야기를 해줘야 한다”는 금융 당국 수장의 발언이 구설에 오른 바 있다. 뉘앙스 문제로 그 내용이 폄하되고 있지만 “투기 위험이 있으면 정부가 경고해줘야 한다”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 인류 역사에서 반복돼온 투기 거품 현상을 집대성한 찰스 킨들버거가 강조한 것처럼 버블 붕괴로 인한 사회적 폐해를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정부 노력의 중요한 첫 단계일 뿐이다. 장차 발생할 수 있는 코인 가격 급락으로 인한 개인적 손실은 투자자 개개인이 감당할 몫이다. 그러나 그들의 손실이 금융기관의 부실 채권 증가 등으로 이어지면서 피해가 경제 전반으로 확산되는 민폐를 끼칠 수 있기 때문에 정부는 꾸준히 과적경고등을 켜줘야 하는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성적으로 할 수 있는 코인 투자방법은 김치프리미엄을 이용한 재정거래가 유일한 듯하다. 해외거래소에서 낮은 가격으로 취득한 코인을 국내거래소로 전송해 높은 가격으로 현금화하면 가격 차이만큼의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외국환거래법을 준수하기만 하면 합법적으로 확실한 수익을 보장할 수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김치프리미엄이 닫히기 전까지 선착순이다.

안재빈 (서울대 교수·국제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