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이법 있으면 뭐하나… 또 두 살 입양아 뇌출혈 의식불명

입력 2021-05-10 04:02

입양한 두살배기 딸을 학대해 의식불명 상태에 빠뜨린 의붓아빠가 경찰에 긴급체포됐다. 양부모의 학대로 사망한 16개월 아기 정인이 사건에 대한 공분이 ‘정인이법’ 제정으로 이어졌음에도 또다시 유사한 아동학대가 발생한 것이다.

경기남부경찰청 여성청소년수사대는 9일 30대 남성 A씨를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중상해 혐의로 긴급체포해 조사 중이다. 경찰에 따르면 A씨 부부는 전날 오후 6시쯤 입양한 B양(2)을 데리고 경기도 화성 자택 인근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병원 도착 당시 B양은 의식이 없는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진은 B양 상태가 심각하다고 판단해 인천 대형병원으로 이송 조치했다. 당시 의료진은 B양 몸에서 부모의 학대가 의심되는 정황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2세밖에 안 된 B양이 뇌출혈 증세를 보였고 얼굴과 목 등 신체 곳곳에 멍자국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상습 폭행에 시달렸음을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의료진은 손상된 뇌 부위가 오른쪽 반구 전체와 왼쪽 반구 일부 등 전체의 3분의 2에 이르고, 가슴 부위에 공기가 들어간 점으로 볼 때 폐 쪽에 충격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B양은 한 차례 수술을 받은 뒤 중환자실로 옮겨졌지만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B양이 신체적 학대로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것으로 판단해 8일 밤 12시9분쯤 A씨를 긴급체포했다. A씨는 경찰조사에서 “자꾸 칭얼거려서 손으로 몇 대 때렸고 이후 아이가 잠들었는데 몇 시간이 지나 깨워도 안 일어나길래 병원에 데려갔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또 다른 학대 행위가 있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조사를 이어가고 있다. 경찰은 구체적인 아동학대 경위를 조사한 뒤 A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계획이다. 또 현장에 있던 아내 C씨가 학대에 가담했는지, 남편의 행위를 방임했는지 등을 확인할 방침이다. A씨 부부는 지난해 8월 경기지역의 입양기관에서 B양을 입양한 것으로 확인됐다. B양에게는 양부모가 낳은 형제 자매들이 있다고 경찰은 밝혔다.

이번 사건이 ‘제2의 정인이 사건’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생후 7개월 무렵 입양된 정인이가 양부모의 학대로 지난해 10월 사망한 이후 전 국민적 공분이 일면서 지난 2월 정인이법이 통과됐다. 아동을 학대하고 살해한 경우 사형이나 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는 게 골자다. 이배근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장은 “정인이 사건으로 온 나라가 큰 홍역을 치렀음에도 유사한 사건이 발생한 건 여전히 아동학대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부족하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남부지법 형사13부는 오는 14일 정인이를 학대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양모와 아내의 학대 사실을 알고도 조치를 취하지 않은 혐의로 기소된 양부에 대한 1심 선고를 내릴 예정이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