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동 전 국무총리가 숙환으로 8일 별세했다. 향년 87세. 이 전 총리는 5공 군사정권 시절부터 ‘3김(金) 시대’를 거치는 정치 격동기의 최일선에서 큰 족적을 남겼다. ‘해불양수’(海不讓水·바다는 어떤 물도 사양하지 않는다)를 좌우명으로 대화와 타협을 앞세우되, 중대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에는 과단성을 보여 ‘일도(一刀) 선생’이란 별칭도 얻었다.
경기도 포천 출신인 고인은 서울대 법대 재학 시절인 1958년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한 뒤 판사와 검사, 변호사 경력을 두루 쌓았다. 1981년 당시 여당인 민주정의당에 입당하면서 정치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1대 총선 때 연천·포천·가평에서 처음으로 국회의원 배지를 단 뒤 2000년 16대 총선까지 내리 6선을 지냈다. 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정부에서 세 차례 원내총무(원내대표)를 지냈으며, 여야 의원들 사이에서 ‘이한동 총무학’이란 신조어를 낳을 정도로 정치력을 인정받았다.
1997년 신한국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른바 ‘9룡(龍)’의 한 명으로 이회창·이인제 후보 등과 맞붙었으나 ‘이회창 대세론’에 막혀 고배를 마셨다. 대선 후 탈당해 김종필(JP) 전 국무총리가 이끄는 자민련에 합류해 총재를 맡았고, ‘DJP 연합’으로 출범한 김대중정부에서는 김종필·박태준 총리에 이어 3번째 총리에 올랐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된 총리였다.
‘협치의 거목’으로 평가받는 고인의 별세에 여야 정치권은 일제히 애도의 뜻을 전했다. 빈소가 마련된 서울 광진구 건국대병원 장례식장에는 정·재계 인사들의 추모 발길이 이어졌다.
김부겸 국무총리 후보자는 9일 이 전 총리 빈소를 찾아 조문한 뒤 “IMF 외환위기 당시 김대중 대통령을 도와 민심을 수습하고 국난을 극복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애도했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도 “공직자로서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에 대해 많은 가르침을 주셨다”고 회고했다.
청와대에서는 유영민 대통령 비서실장과 이철희 정무수석이 빈소를 찾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나라 정치에서 통합의 큰 흔적을 남기고 지도력을 발휘한 이 전 총리를 기리고, 유족들에게도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와 윤호중 원내대표도 고인을 조문했다. 송 대표는 “고인은 여야 간, 보수·진보 간 소통과 통합을 위해 노력해 주셨다”고 했다. 국무총리를 지낸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는 “고인은 늘 통 큰 정치를 보여준 거목이었다. 여야를 넘나들며 타협과 대화의 정치를 추구한 의회주의자였다”고 추모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발인은 11일 오전 6시.
지호일 박재현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