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세에 그림을 시작한 94세 화가 김두엽 할머니의 그림에세이집 ‘그림 그리는 할머니 김두엽입니다’가 출간됐다. 소박하지만 따뜻한 그림 110여장과 그 그림들에 담긴 이야기들을 담담하게 적은 아름다운 책이다.
김두엽 할머니는 94세 현역 화가다. 현재 서울 서소문 일우스페이스에서는 김 할머니와 그의 아들 이현영 화가의 초대전이 열리고 있다. 그동안 10여 차례 전시회를 열었고 그의 그림을 좋아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학교를 못 다녔고 그림을 배운 적도 없는 김 할머니는 83세의 어느 날 종이에 사과 하나를 그렸고, 이를 본 막내아들 현영씨의 칭찬에 그림을 시작한다. 김 할머니는 전남 광양의 집에서 택배 일 나간 막내아들을 기다리며 그림을 그렸다. 집과 가족, 동네, 꽃, 나무, 개, 닭 등이 그의 그림 소재들이다.
“너는 공부한 그림이라 참 잘 그리는구나.” “어머니 그림이 제 그림보다 나아요. 공부를 아무리 많이 해도 어머니처럼 예쁘게 못 그리네요.”
김 할머니는 89세인 2016년 생애 첫 전시회를 한다. 92세인 2019년에는 KBS ‘인간극장’의 ‘어머니의 그림’ 편에 소개돼 전국적으로 알려진다. 지난달엔 광양에 김 할머니의 갤러리가 생겼다. 평생 농사를 지었고 50이 넘어 세탁소를 했으며 80이 넘어서야 노동에서 풀려난 인생사와 달리 김 할머니의 그림은 유쾌하고 순수하고 따뜻하다. 친근하고 귀여운 소재, 단순하지만 과감한 구도, 밝고 화려한 색감이 두드러진다. 아름다운 시절을 환기시키며 미소 짓게 하고 살짝 눈시울을 적시게도 한다.
김 할머니를 보며 75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101세까지 살면서 미국 국민화가가 된 그랜드마 모제스, 75세에 신진 작가로 선정된 후 80대에 슈퍼스타가 된 영국 할머니 화가 로즈 와일리를 떠올리는 이도 있다.
책에 담긴 할머니 이야기는 그가 그리는 그림처럼 따뜻하고 희망차다. 김 할머니는 “사람의 앞날은 알 수 없다는 말이 참이라는 걸 내가 보여주게 됐네요”라며 “내일도 그릴 거예요”라고 썼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