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완성차 시장에서 굳건한 ‘허리 역할’를 담당했던 외국계 완성차 3사(한국지엠·르노삼성자동차·쌍용자동차)가 수입차 업체의 공세에 휘청이고 있다. 지난달 외국계 3사의 내수 판매량이 사상 처음 메르세데스-벤츠와 BMW 판매 합계를 밑돈 것으로 나타났다. 경영난과 노사 갈등, 반도체 부족 등 악재에 시달리는 외국계 3사의 향후 위기관리 능력이 본격적으로 시장의 시험대에 오른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9일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한국수입차협회 등에 따르면 지난달 벤츠(8430대)와 BMW(6113대)의 국내 신규 등록 대수는 총 1만4543대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달 한국GM(5470대)과 르노삼성차(5466대), 쌍용차(3318대)의 내수 판매 합계(1만4254대)보다 289대 더 많은 수치다. 벤츠와 BMW 판매 합계가 외국계 3사를 제치고 ‘중견’ 자리에 꿰찬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외국계 3사 부진에는 쌍용차의 경영 불안이 가장 큰 변수로 작용했다. 올해 들어 쌍용차는 협력업체의 납품 거부로 공장 가동을 중단하고 법정관리 등 대내외 리스크가 일시에 몰렸다. 이 여파로 지난 1월 5648대에 달했던 쌍용차 내수 판매는 2월 2673대로 주저앉았다. 지난달 신차 효과로 살짝 반등하기는 했지만, 이는 한국GM과 르노삼성차가 같은 시기 견조한 판매량을 유지했던 것과 상반된 모습이었다.
외국계 3사가 뒷걸음질 치는 사이 벤츠와 BMW는 서서히 내수 시장을 파고들었다. 지난해 코로나19 확산 여파에도 양사는 꾸준히 판매량을 늘려가며 선방했다. 지난해 8월과 12월 BMW와 벤츠는 각각 개별 실적에서 쌍용차와 한국GM을 제치고 내수 판매 3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 결과 지난해 12월 1만423대였던 외국계 3사와 수입차 2곳의 내수 판매 합계 차이는 지난 1월 3653대로 좁혀졌다. 반도체 수급 대란이 전 완성차 업계를 본격적으로 강타한 지난 2월 외국계 3사의 판매량은 4000대 가까이 줄었지만, 벤츠·BMW는 200여 대 감소에 그쳤다.
문제는 외국계 3사의 ‘충성 고객’마저 등을 돌린다는 점이다. 국내 시장조사업체인 컨슈머인사이트가 지난해 7월 기준 ‘1년 이내에 차량을 교체한 소비자’ 843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외국계 3사 차량 보유자 가운데 다시 외국계 3사를 선택한 소비자는 37.3%에 불과했다. 50.4%가 현대차·기아로 갈아탔고 12.3%는 수입차로 유입됐다.
외국계 3사의 신규 고객이 뚜렷하게 증가한 것도 아니었다. 현대차·기아와 수입차 보유자의 각각 13.4%, 8.2%만이 외국계 3사 차량으로 교체했다. 현대차·기아 차량 보유자 가운데 74.5%는 현대차·기아로 되돌아갔고, 수입차 보유자의 61.2% 역시 수입차를 다시 선택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벤츠와 BMW 등 수입차 업체들이 공격적인 홍보와 다양화된 모델로 가격 접근성을 높이면서 럭셔리 브랜드를 선호하는 국내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최지웅 기자 wo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