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교수’ 명강의, KGC 무패 챔프 신화

입력 2021-05-10 04:07
안양 KGC 선수들이 9일 안양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남자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4차전에서 전주 KCC에 승리를 거두고 챔피언에 오른 뒤 우승을 상징하는 별을 따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남자프로농구 안양 KGC가 전주 KCC를 무너뜨리고 통산 3번째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미국프로농구(NBA) 출신 ‘설교수’ 제러드 설린저의 압도적 활약에 국내 선수들의 기량까지 뒷받침된 KGC는 6강 플레이오프(PO)부터 한 번도 패하지 않고 10전 전승 우승한 최초의 팀이 됐다.

KGC는 9일 안양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20-2021 현대모비스 남자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4차전에서 KCC에 84대 74로 승리했다. KGC는 챔프전 4연승으로 2016-2017시즌 이후 4년 만에 통산 3번째 정상에 섰다.

우승 길목에서 KGC가 보여준 경기력은 강렬했다. 정규리그를 3위로 마친 KGC는 부산 KT와 6강, 울산 현대모비스와 4강 PO(5판 3선승제)를 각각 3연승으로 끝내곤 챔프전(7판 4선승제)까지 전승하며 1997년 프로농구 출범 이후 최초로 PO 무대에서 10전 전승으로 우승하는 대기록을 작성했다.

설린저의 활약이 주효했다. KGC는 외인 선수들이 부진하자 정규리그 종료 10경기를 앞두고 설린저를 영입하는 모험수를 뒀다. 설린저는 NBA 통산 269경기 평균 10.8점 7.5리바운드를 올릴 정도로 수준이 높았지만 부상으로 약 2년의 공백기를 가진 선수였다.

설린저는 적응기 없는 활약으로 KGC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 내외곽을 가리지 않는 득점 능력과 넓은 시야의 패스 덕에 오세근 전성현 문성곤 등 국내 선수들의 컨디션도 덩달아 살아났다. 이날도 설린저는 42점 15리바운드의 ‘더블더블’ 활약을 펼쳤고, 기자단 투표 총 86표 중 55표를 받아 챔프전 최우수선수(MVP)에 올랐다.

챔프전 MVP에 오른 뒤 골대 그물을 자르는 우승 세리머니를 펼치는 KGC 외국인 선수 설린저의 모습. 연합뉴스

정규리그 1위 KCC는 정규리그 MVP 송교창(22점)과 정창영(18점) 등이 분전했지만, 설린저 외에 오세근(20점 7리바운드)까지 터진 KGC에 무릎을 꿇으며 챔프전 전패란 불명예를 썼다. 통산 6번째 우승도 다음을 기약하게 됐다.

KCC는 1쿼터 집중력 있는 수비로 KGC와 대등한 경기를 했다. 하지만 KGC의 진가는 2쿼터부터 시작됐다. 설린저는 상대 수비 위치를 미리 파악한 재치 있는 패스로 동료 선수들의 득점을 이끌어내는가 하면, 3점슛을 던지는 족족 3개나 성공시키며 KCC의 수비를 무너뜨렸다. 2쿼터에만 점수가 47-33으로 벌어졌다.

3쿼터엔 초반부터 승부가 기울었다. KGC 국내 선수들은 설린저에 수비가 몰리자 계속해서 움직이며 공격 기회를 창출했다. 반면 점수가 벌어지자 마음이 급해진 KCC 선수들의 무리한 공격은 KGC의 견고한 수비에 자주 막혔다. 3쿼터에만 KGC의 스틸이 6개나 나왔을 정도. KCC도 그냥 포기하진 않았다. 쿼터 중후반 송교창을 앞세운 속공을 연거푸 성공시키며 점수를 11점 차까지 좁혔다. 거기까지였다. KCC는 정창영의 멋진 수비와 득점, 끈질긴 공격 리바운드로 안간힘을 썼지만, 4쿼터 74-65에서 송교창이 5반칙 퇴장당해 추격의 동력을 잃었다. 설린저는 78-67에서 원 핸드 덩크를 성공시키며 KGC 승리의 쐐기를 박았다.

KGC 선수들이 우승 직후 김승기 감독(가운데)을 헹가래 치고 있다. 연합뉴스

김승기 KGC 감독은 유재학(현대모비스) 전창진(KCC) 등 프로농구 대표 명장들을 모두 잡아내고 KGC에서 2번의 우승을 이끌며 젊은 감독의 ‘대표주자’로 확고한 입지를 구축했다. 그는 경기 후 “두 감독님 모두 대단하신 분들이지만 더 발전하려면 젊은 감독들이 그분들을 이겨내야 한다”며 “내가 잘한 것보다 선수들이 잘해준 결과다. 너무 편하게 와서 눈물도 안 난다. 다음 시즌에는 더 신나는 농구로 좋은 성적을 거두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