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성 논란에 ‘비밀위원회’ 없앤 그래미상… 오명 벗을까

입력 2021-05-10 04:05
캐나다 출신 R&B 싱어송라이트 위켄드의 정규 4집 ‘애프터 아워즈’의 대표 수록곡 ‘블라인딩 라이츠’의 커버 사진. 위켄드는 지난해 4집 수록곡 ‘블라인딩 라이츠’와 ‘하트리스’로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인 ‘핫 100’에서 1위를 차지했지만, 그래미 어워즈의 후보로 오르지 못했다. 위켄드 인스타그램 캡처

“그래미는 부패했다.” 2021년 그래미 어워드의 수상 후보자들이 공개된 작년 11월 캐나다 가수 위켄드가 자신의 SNS에 남긴 글이다. 그가 분개한 이유는 명확했다. 명단 어디에서도 본인의 이름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위켄드의 분노 표출은 오만한 태도가 아니라 음악 팬들도 납득할 행동이었다. 그가 2020년에 발표한 4집 ‘애프터 아워즈’는 여러 매체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앨범 수록곡 중 ‘블라인딩 라이츠’는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차지했으며, 무려 57주간 10위권에 머물렀다. 업계 관계자들과 음악 애호가들은 위켄드가 그래미 후보에 호명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으나 그래미는 전혀 다른 결과를 내놨다. 급기야 위켄드는 지난 3월 그래미 어워드 개최를 앞두고 뉴욕 타임스를 통해 그래미를 보이콧하겠다고 선언했다.

위켄드는 입장을 표명하며 ‘비밀 위원회’ 때문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음악계 종사자 15~30명으로 이뤄진 이 위원회는 1989년 조직됐다. 신원이 철저히 비밀에 부쳐진 이들은 심사위원들의 1차 투표에서 뽑히지 못한 작품을 2차 투표에 다시 넣는 등 후보 지명 과정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그래미 어워드를 주관하는 레코딩 아카데미의 전 회장 데버라 두건은 2020년 해임된 뒤 자기들과 관계가 있는 아티스트를 밀어주고 특정 작품이 지명되도록 조작했다며 비밀 위원회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공명하지 못하다는 지적이 거세게 일자 결국 레코딩 아카데미는 지난달 30일 비밀 위원회를 없애겠다는 성명서를 냈다. 레코딩 아카데미 1만 1000여 회원의 투표로 후보를 지명하는 방식을 도입하겠다고도 했다. 레코딩 아카데미는 이번 변화가 그래미 어워드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한 노력임을 알렸다.

위켄드 사건 이전에도 그래미 어워드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존재했다. 특히 유색인종 아티스트를 홀대하는 듯한 후보 선정과 시상으로 ‘화이트 그래미’라는 오명을 떠안았다. 디스코, 펑크, R&B를 미끈한 사운드와 대중적인 멜로디로 표현한 마이클 잭슨의 1979년 앨범 ‘오프 더 월’은 평론가들이 걸작이라고 극찬했지만 ‘올해의 앨범’ 후보에 오르지도 못했다. 이 부문만 봤을 때 총 63회 시상 중 백인 아티스트가 트로피를 받은 횟수는 46회인 데 반해, 흑인 아티스트는 13회에 불과하다. 나머지 4회는 백인과 흑인 뮤지션이 함께한 사운드트랙이거나 백인과 동양인의 작품이었다. 유색인종 수상자 비율이 현저히 낮다.

이번 조치로 그래미 어워드가 의심의 시선을 말끔히 떨칠 수 있을지 예단하기 어렵다. 다음 시상식의 후보가 발표되고, 본 행사를 치렀을 때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려고 신경 썼음을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래미 어워드가 변화를 위해 노력 중임을 확실하게 보여 주려면 사과만 하고 유야무야 넘어가는 대신 잘못한 행적이 있다면 낱낱이 밝히는 작업이 필요하다. 쇄신은 철저한 자기비판에서 시작된다.

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