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64년 차 ‘국민배우’ 안성기가 5월 광주의 아픔을 기리는 영화 ‘아들의 이름으로’(이정국 감독)와 함께 돌아왔다. 김지훈 감독의 2007년 영화 ‘화려한 휴가’가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시민들을 기억하는 데 초점을 뒀다면, ‘아들의 이름으로’는 지금 살아있는 사람들의 ‘반성’을 다룬다. 안성기는 ‘화려한 휴가’에서 시민군 대장 박흥수를 연기했다.
6일 화상으로 만난 안성기는 5·18민주화운동에 관한 생각을 묻자 “사실은 좀 온건한 편이다. 반성하고 용서해야 한다는 게 제 마음”이라며 “단죄하는 장면은 영화니까 가능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영화에선 대리기사 오채근(안성기)이 죽은 아들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사는 5·18 가해자에게 복수를 준비한다.
영화 속 오채근의 연기는 절제돼 있다. 그는 “(채근이) 복수까지 하려면 감정이 단계적으로 쌓여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그래야 (관객들이) 따라올 수 있기에 감정을 절제하면서 차분하게 연기했다”고 말했다. 이어 “마지막 부분에서 (채근이) 슬픈 감정으로 독백하는데 절제와 미안함, 사죄와 반성 같은 감정을 복합적으로 엮으려 했다”고 말했다.
안성기는 1980년 5월 당시를 회고하며 “영화 ‘바람불어 좋은 날’을 찍고 있었다. 한참 후에 광주의 진상을 알고 많은 국민처럼 저 역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며 “40년이 넘었지만 광주는 아직 큰 아픔으로 우리에게 남아있다. 이 영화를 통해 위로받고 나아가 용서와 화해가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바람불어 좋은 날’은 80년대 사회 비판 영화의 작은 물꼬를 텄다. 그는 “영화관에서 개봉하기 어려운 분위기였는데 5·18 이후 어수선한 상황에서 개봉될 수 있었다”며 “덕분에 많은 사람이 한국영화에 희망을 갖게 됐다. 그 영화를 통해 배우로서 길을 탄탄하게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안성기는 ‘아들의 이름으로’에 출연료를 받지 않고 투자자로 이름을 올렸다. 그는 “시나리오를 보고 하룻밤 만에 출연을 결정했다. 주제가 무겁긴 했지만 드라마로서 아주 완성도가 있었다”며 “적은 예산으로 하다 보니 이정국 감독과 같이 투자도 하는 걸로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저를 필요로 할 때 제가 잘 뿌리치지 못한다”며 “작품만 좋다면 사실 어떤 여건에서도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과로와 피로 누적으로 입원한 것에 대해선 “건강은 아주 좋다. 전처럼 잘 지내고 운동도 한다”며 “가리는 것 없이 잘 먹는 게 건강 유지의 비결”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나이가 들어도 역할은 있다. 그걸 잘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나이 때문에 드는 아쉬움은 있다. 10년만 젊었으면 ‘명량’에서 최민식 대신 이순신 역할을 하는 건데…”라며 웃었다.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