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에클레시아’를 통해 본 바울의 세계관

입력 2021-05-14 03:06

성서학자 웨인 믹스의 ‘1세기 기독교와 도시 문화’의 원제는 ‘첫 도시 그리스도인(The First Urban Christians)’이다. 저자의 목표는 두 가지다. ‘이들이 살던 세계’를 소개하고, ‘이들이 만든 세계’를 규명하는 것이다. 전자를 ‘바울의 세계’, 후자를 ‘바울의 세계관’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의 목표가 두 번째에 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영국 신학자 톰 라이트는 믹스의 이 책을 극찬하면서도 이 지점에서 아쉬움을 표명한다. 라이트는 바울 이해의 목표를 ‘바울이 구축한 세계관을 파악해 제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믹스 역시 자신과 같은 목표를 설정했으나 “조심스러운 성격으로 인해 논증을 더욱 발전시키지 못한 것”으로 본다. 믹스가 바울의 세계관이란 자신의 목표를 향해 돌진하지 않은 것은 그의 성격 때문만은 아니다. 신중함은 그의 학문적 방법론의 핵심 미덕이다.

책은 역사와 사회과학, 신학 세 영역에 걸쳐 있다. 서구의 많은 성서학자가 그렇듯 믹스의 학자적 자의식은 신학자보다 역사가에 가깝다. 믹스의 이 책은 역사와 사회과학, 신학이 서로를 과도하게 침해하지 않는, 신중한 조율을 통해 바울의 세계관에 접근하려는 시도의 모범이다.

책이 나온 1983년은 초기 기독교에 대한 사회사적 연구의 르네상스라 할 만한 시기였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저지와 독일의 타이센, 미국 예일대의 말허비와 믹스가 대표적 논자다. 이들은 초기 기독교인이 대체로 빈곤층에 속해 있었다는 오랜 ‘옛 합의’를 뒤집고, 최상층과 최하층을 제외한 다양한 계층이 교회 안에 존재했다는 ‘새 합의’를 형성했다. 책의 2장은 새 합의 진영의 핵심적 주장이다. 이 견해는 한동안 광범위한 지지를 얻다가 2000년대 이후 거센 도전을 받았다. 이 덕에 지금은 초대 그리스도인의 사회 계층 문제에 대해 꽤 선명한 통찰을 갖게 됐다.

3장은 ‘에클레시아’라고 불리는 바울 공동체의 특성을 다룬다. 바울의 교회들은 쿰란 공동체에 비길 만큼 강력한 결속력을 보이면서도 광야에서 은둔 생활을 하지 않고, 도시에서 일상생활을 계속해 나갔다는 특징이 있다. 이런 독특한 세계관은 믹스가 연구 초점을 도시에 둔 주요 이유 중의 하나다.

바울 공동체의 이런 특성은 의례에 힘입은 바 크다. 5장에서는 세례를 포함한 예배학적 요소, 공동체의 독특한 자의식을 형성하게 만든 관행을 탐구한다. 4장에선 교회 정치 조직을 다루는데, 권위의 소재를 평면적으로 나열하는 데 그쳐 이 책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으로 보인다.

예의 신중함 때문에 많은 신학적 주장을 펼치지는 않지만, 독자들은 믹스가 그린 밑그림을 바탕으로 라이트의 ‘바울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비롯한 여타 바울 신학 논의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박영호 목사(포항제일교회·미래목회와말씀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