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여의도 문법 아닌 본인 페이스로 정치 하는 중”

입력 2021-05-06 04:04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3월 4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어떤 위치에 있든지 자유민주주의와 국민을 보호하는 데 온 힘을 다하겠다”며 사퇴 의사를 밝히고 있다. 권현구 기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물밑 행보가 계속되고 있다. 향후 행보와 선택지를 두고 온갖 관측과 시나리오가 나오지만 여전히 그는 장막 뒤에 머무른다. 정치인과의 접촉은 아예 피하고 있으며, ‘캠프’를 조직하는 움직임도 특별히 없다.

다만 그의 주변 인사들 말을 종합하면 윤 전 총장은 현재 자신의 페이스에 맞춰 자기 방식으로 ‘정치를 하는 중’이란 해석이 가능하다. 적어도 기존의 ‘여의도 문법’대로 나가지는 않을 것이란 얘기다.

윤 전 총장과 가까운 한 인사는 5일 “윤 전 총장은 ‘언제 정치판에 나설까’의 문제보다 ‘어떻게 나라를 바로 세울까’에 대한 고민이 더 많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본격적인 대선 출정에 앞서 자기 내실화에 치중하는 단계라는 뜻이다.

그는 지난달 2일 부친과 함께 서울시장 보궐선거 사전투표를 하면서 언론 앞에 선 이후 공개활동을 일절 하지 않고 있다. 주로 집에서 책과 논문을 보거나, 온라인 등을 통해 경제, 외교·안보, 복지 문제 등을 탐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분야 전문가들과 전화통화로 의견을 주고받기도 한다.

윤 전 총장은 외교부 2차관을 지낸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와는 지난 3월 북한 탄도미사일 발사 당시, 지난달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삼성전자를 비롯한 글로벌 업체를 소집해 ‘반도체 회상회의’를 열었을 때 등 주요 외교 현안이 생기면 해법 등을 놓고 장시간 전화 토론을 벌였다고 한다.

최근에는 여러 경제 전문가들에게 청년 주거 문제 및 미래 인구구조 문제 등 거시경제 관련 자문을 많이 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른 지인은 “공부라기보다는 자신의 어젠다를 정리하는 과정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윤 전 총장의 이런 ‘대권 수업’ 내용은 외부에 공개됐는데, 주변 인사들은 이 자체가 ‘윤석열식 정치’의 일환이라는 평가도 내놓는다. 윤 전 총장의 국가관과 철학, 중점 정책 등에 대해 국민에게 꾸준히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는 것이다.

윤 전 총장이 기성 정치권과 거리를 두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가 당장 특정 정치인과 손을 잡거나, 정치세력에 편입되는 식의 장면을 연출할 가능성은 낮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국민의힘 합류’와 ‘제3지대 세력화’ 같은 정치공학적 문제가 중요 고심거리이긴 하지만, 지금 윤 전 총장의 우선순위는 아니라는 뜻이다.

이는 야권 대선주자 지지율 1위를 달리는 상황이 기존 정치세력의 후광에 힘입은 게 아니라는 판단도 담긴 것으로 보인다. 공정과 원칙, 권력과 타협하지 않는 뚝심 같은 상징이 현 경쟁력의 원천이라면 향후 행보 역시 이를 훼손하지 않는 방향으로 정해질 수 있다. 다른 지인은 “관건은 윤 전 총장이 진짜 정치선언을 했을 때 어떤 비전과 문제 해결방안 등을 제시하는지의 문제”라며 “지도자로서의 자격을 갖추기 위해 뚜벅뚜벅 나아가는 모습을 보이고 싶어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 전 총장이 등판 시기를 고심하는 데는 현실적으로 야권 상황 자체가 가변적이라는 점도 작용한다. 국민의힘의 경우 6월 전당대회가 예정된 지도부 교체기이고, 이후에도 국민의당과 통합 문제가 남아 있다. 윤 전 총장과 소통하는 한 교수는 “윤 전 총장이 언제, 어떻게 움직일까를 얘기하기 전에 그와 연합하려는 세력이 준비가 돼 있는지를 먼저 봐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지호일 강보현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