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기 어업이 성행한 벳세다에서 자란 한 남성은 갈릴리호수에서 물고기를 잡는 걸 천직으로 여겼다. 벳세다가 그리스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던 곳인지라 유대인임에도 그리스식 이름을 가진 그는 그 지역의 소수민족으로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이 탓에 당시 유대인에게 화제였던 세례 요한과 예수의 ‘민족 갱생 운동’도 뒤늦게 접했다. 유대인 거주촌이 큰 가버나움으로 이주한 뒤에도 어업에 종사하던 그는 낚시하다 만난 사람에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돼라”는 기이한 명령을 듣는다. 이 명대로 초대교회의 지도자가 돼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순교한 이 사람은 바로 사도 베드로다.
무릇 그리스도인이라면 베드로처럼 인생이 뒤바뀌는 회심의 경험이 있다. 그리스어로 ‘메타노이아’(근본적 전환)로 불리는 순간이다. 캐나다 리젠트 칼리지의 초대학장이자 영성신학 명예교수인 제임스 휴스턴과 같은 대학의 석좌교수인 옌스 치머만은 이 책에서 메타노이아를 경험한 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얻은 기독교인 42명의 이야기를 전한다. 아브라함과 베드로, 순교자 유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 단테와 마르틴 루터, 블레즈 파스칼과 쇠렌 키르케고르, CS 루이스와 자크 엘륄 등 구약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당대를 풍미한 이들에게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를 학술적으로 살펴본 대과업이다. 저자들이 자신들을 포함한 42명의 학자의 논문을 인물별로 엮어내 이 책이 세상에 빛을 볼 수 있었다. 한국어판 역시 1056쪽에 달하는 벽돌책이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메타노이아는 고향을 떠나는 일로 시작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당시 최첨단 도시인 메소포타미아 북부의 도시 하란을 떠날 것을 명하며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고 약속한다. 하나님이 가라고 한 가나안은 고급문화가 발달한 자신의 고향과 거리가 멀었지만, 하나님의 축복을 절대적으로 신뢰한 그는 과감히 집을 떠난다. 아브라함은 이후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해 첩을 들이는 등의 과오를 저지르지만, 하나님의 자비 아래 그분과 ‘신실한 친구’로 성장한다. 실패와 용서, 언약과 성취가 반복되는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 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핵심 이야기”라 할 만하다.
2세기 로마 시대에 살았던 순교자 유스티누스에게 있어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건 국가의 핵심 가치관에 반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미였다. 기독교 사상가인 유스티누스는 황제와 원로원이 그리스도인에게 사형선고를 내리지 않도록 이들을 신앙과 정체성을 변호하는 탄원문을 썼다. ‘제1·2변증서’로 전해지는 이 글로 현대인은 초대교회 성도의 정체성을 엿볼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순결하게 살지만, 외부인은 부도덕하고 문란하게 산다. 그리스도인은 유아 유기를 반대하고 가난한 사람을 돌본다.” 유스티누스가 기록한 참된 그리스도인에게 나타나는 표지다. 그는 그리스도인을 둘러싼 소문이 아닌 이들의 결백한 행실을 보고 사형을 금해 줄 것을 황제에게 촉구한다.
책에는 안나 마리아 판 스휘르만, 잔느 귀용 부인 등 근대에 영성가로 이름을 알린 여성 그리스도인도 등장한다. 이중 17세기 네덜란드에서 활약한 스휘르만은 언어에 특히 탁월한 학자였다. 12개국어에 능통했으며, 1641년에 여성이 예술과 학문의 연구에 적합한 이유를 담은 책을 펴내 명성을 얻었다. 스휘르만에게 있어 그리스도인이 되는 건 곧 자신을 철저히 버리는 일이었다. 그는 ‘하나님과의 연합’을 신학의 최고 경지로 여기고 자기 부인을 철저히 추구할 때 행복이 뒤따른다고 강조했다. 이는 귀용 부인도 마찬가지였다. 저자들은 이들의 ‘자기 부인’ 신학이 안락 추구와 소비지상주의가 특징인 현대 사회 그리스도인에게 영성의 깊이를 더해주는 마중물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학술논문이 엮인 벽돌책임에도 이 책이 독자를 잡아끄는 건 성경과 역사 속 그리스도인의 서사를 정교하게 묘사했다는 점 때문이다. 수많은 실패에도 끝내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받고, 시대와 문화를 거스르며 “나는 그리스도인이다”라고 외친 이들의 삶은 현대 그리스도인에게도 위안과 감동을 준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