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 뒤집기 쇼, ‘엘린이’들 환호

입력 2021-05-06 04:06
서울 중랑구 리틀야구단 소속의 다문화가정 어린이 정동건군이 5일 서울 송파구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1시즌 프로야구 KBO리그 경기에서 어린이날을 맞아 홈팀 두산 베어스 유니폼을 입고 시구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정군의 이름을 유니폼에 새기고 출전해 3회말 2루타를 치는 두산 중견수 박건우. 연합뉴스

“아들에게 올해가 마지막 어린이날입니다. 야구장이 문을 열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어요.”

두산 베어스의 흰 유니폼 상의를 입은 40대 자영업자 박모씨는 초등학교 6학년생 아들과 함께 5일 서울 송파구 잠실구장을 찾았다. 지난해 어린이날 프로야구 경기는 코로나19 대유행에 따라 순연된 개막전으로 편성됐고 방역을 위해 무관중으로 진행됐다. 1년 만에 어린이날을 다시 맞이한 이날 잠실구장을 포함한 전국 야구장 5곳은 어린이 팬의 발길을 들였다. 박씨의 아들은 “아버지가 두산을 응원하지만, 나는 오늘 이기는 팀의 팬이 되겠다”며 웃었다.

두산과 LG 트윈스는 잠실구장을 나눠 쓰는 ‘한 지붕 두 가족’이다. 그래서 어린이날 경기가 중요하다. 1996년부터 2차례(1997년·2002년)를 제외하고 올해까지 25번 펼쳐진 두산과 LG의 어린이날 경기는 앞으로 수십년을 팬으로 동행할 동심을 사로잡는 승부가 되곤 한다. 부모와 다른 유니폼을 입은 ‘두린이’(두산 어린이)와 ‘엘린이’(LG 어린이)를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잠실구장이다.

하루 전까지 굵은 빗줄기를 쏟았던 잠실구장의 하늘에선 어린이날 선물 같은 봄볕이 쏟아졌다. 저마다 응원하는 팀 유니폼을 입은 가족 단위의 팬들은 따뜻한 봄기운을 만끽하며 어린이날 야구장 나들이를 즐겼다. 코로나19 방역 수칙에 따라 10%만 개방된 잠실구장의 입장 관객 수는 2427명. 2019년까지 매년 어린이날마다 울려 퍼졌던 만원 관중의 함성은 없었지만, 이번에도 입장권 전량이 팔려나갔다. 두산과 LG의 어린이날 매진 행진은 관중을 받지 못한 지난해를 빼고 2008년부터 올해까지 13년을 이어졌다.

올해 잠실구장의 홈팀으로 나선 두산은 중랑구리틀야구단 소속인 다문화가정 어린이 정동건군을 시구자로 초청했다. 두산 중견수 박건우는 자신의 팬인 정군의 이름을 유니폼에 새기고 출전했다. 시구를 앞두고 전광판으로 상영된 영상 편지에서 “꼭 프로야구 선수가 됐으면 좋겠다. 다치지 않고 즐겁게 야구를 하라”며 정군의 꿈을 응원했다.

박건우는 2-0으로 앞선 2회초 2사 1·3루 위기에서 우중간의 애매한 위치로 날아든 LG 9번 타자 정주현의 타구를 전력 질주로 쫓아 다이빙캐치로 잡아내는 호수비를 선보였다.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는 이날 각 팀에서 1명씩을 대표자로 선정해 다문화가정 어린이 이름을 유니폼에 새겼다. LG에선 유격수 오지환이 등번호 위에 김수진양 이름을 새기고 출전해 승부를 갈랐다. 4-4로 맞선 6회초 1사 2루에서 우전 1루타를 쳐 주자 홍창기를 홈으로 불렀다. LG가 7대 4로 승리한 이 경기의 결승타. LG는 두산과 어린이날 경기에서 11번째 승리(14패)를 수확했다.

LG 좌익수 김현수는 5회초 투런 홈런으로 개인 통산 200홈런에 도달해 어린이날 축포를 터뜨렸다. KBO리그에서 29번째로 달성된 기록이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