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공공기관이 암호화폐 관련 펀드에 지난 4년간 500억원가량을 투자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윤창현 의원이 각 기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중소벤처기업부와 KDB산업은행, 국민연금공단, 우정사업본부, IBK기업은행이 2017년 1월부터 올해 3월까지 암호화폐 관련 투자상품에 총 502억1500만원을 투자했다. 각 기관이 펀드에 자금을 대고 펀드 운용사가 국내 주요 암호화폐 거래소에 투자하는 간접투자 방식으로 진행됐다. 정부가 직접투자 한 것은 아니라지만, 대중의 암호화폐 투자를 ‘잘못된 길’로 규정한 정부 입장을 생각하면 앞뒤가 맞지 않는 행위다. 정부의 말과 행동이 이렇게 따로 놀면 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생기기 어렵다.
정부는 암호화폐를 화폐로 인정하지 않는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저는 화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정부는 암호화폐나 가상화폐가 아닌 ‘가상자산’이란 용어를 쓴다”고 했다. 다만 “가상자산은 무형이지만 경제적 가치가 있으니까 시장에서 거래되는 자산”이라며 자산으로서의 가치는 인정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앞서 국회에 나와 “가상자산에 투자한 이들까지 정부에서 다 보호할 수는 없다”면서 “가상자산이 (제도권 시장에) 안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실체가 불분명한 고위험 자산에 단순히 많은 사람이 투자하고 있다고 해서 그들을 다 보호해줄 수는 없다는 정부 입장은 이해한다. 개인의 투자 손실을 정부가 책임질 이유는 없다. 하지만 투자 광풍이 불어 매일 엄청난 금액이 거래되고 있는 상황을 정부가 그저 방관, 방치만 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위험한 묻지마 투자가 횡행하는데 정부가 손을 놓고 있어선 안 된다. 암호화폐가 백해무익한 것이어서 거래를 완전히 금지시킬 것이 아니라면, 거래의 규율을 세우고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시장의 이상 과열과 혼탁을 막아야 한다. 이런 노력 없이 암호화폐 투자 수익에 세금을 매길 궁리만 하거나 정부 스스로가 암호화폐 투자 대열에 서 있으면 곤란하다.
[사설] 암호화폐 투자 잘못된 길이라면서 정부가 투자하다니
입력 2021-05-06 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