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덕(37)과 김보라(39)는 부부다. 한국예술종합학교 2002학번인 이들은 둘 다 한국 현대무용을 대표하는 안무가로 꼽힌다. 해외에서 러브콜이 이어지던 두 사람이 코로나19로 국내에 계속 머문 덕분에 올해 비슷한 시기에 공연을 올리게 됐다. 김재덕은 7~8일 LG아트센터의 올해 기획공연으로 대표작 ‘다크니스 품바’&‘시나위’를 선보이고, 김보라는 6월 4~6일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국립현대무용단의 기획공연 ‘그 후 1년’으로 관객과 만난다.
4일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에서 만난 두 사람은 “코로나 이후 부부로서 가장 오랜 기간 함께 살며 대화를 나눈 것 같다”고 말했다. 김보라는 “해외 투어가 중단되며 ‘일이 없어진다’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이에 비해 김재덕은 “개인적으로 음악에 집중했다. 믹스와 마스터링 등을 공부하면서 두 번째 정규 앨범과 싱글 앨범들을 계속 냈다”고 답했다.
김재덕의 경우 작곡·작사·노래까지 하는 뮤지션으로 지금까지 2장의 정규 앨범과 30여곡의 싱글을 발표했다. 자신의 안무 작품 속 음악도 작곡하는 그는 아내 김보라의 작품에서도 음악을 맡는 경우가 많다. 음악 외엔 아내의 작품에 일절 참여하지 않는다. 그는 지난해 발표한 두 번째 정규앨범 중 2곡과 싱글 가운데 6곡을 저예산이지만 뮤직비디오까지 만들었다. 코로나 시대에 어울리는 형태로 관객을 만난 셈이다.
김보라도 지난해 처음으로 댄스 필름 감독에 도전했다. 무대 공연을 그대로 보여주는 방식이 아닌 제작과정까지 담은 댄스 필름 2개와 코로나 이후 무용단의 활동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찍었다. 김보라는 “코로나 이후 좋든 싫든 영상의 중요성이 커진 만큼 활용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LG아트센터에서 선보이는 ‘다크니스 품바’는 2006년 초연된 김재덕의 대표작이다. 2005년 프로 데뷔작 ‘크레셴도’에 이은 두 번째 작품으로 전통적 품바(각설이) 선율을 현대적 음악과 움직임으로 재해석했다. 2013년 초연된 솔로 춤 ‘시나위’ 는 굿거리장단에 맞춰 김재덕의 직관적이고 민첩한 움직임을 보는 재미가 있다.
라이브 음악과 춤이 어우러지는 김재덕 스타일을 보여주는 ‘다크니스 품바’는 고교 시절 강렬한 인상을 받은 가수 신해철의 ‘모노크롬’ 앨범에서 영감을 얻었다. 초연 이후 국내외에서 주목받으며 지금의 그를 있게 한 작품이다. 2009년 싱가포르 T.H.E 댄스 컴퍼니의 해외상임안무가가 된 것도 이 작품 덕분이었다. 2016년 영국 더 플레이스, 2017년 러시아 체홉 국제연극제, 2019년 헝가리 시겟 페스티벌 등 주요 무대의 초청이 이어지고 있다.
김보라는 지난해 6월 권령은, 랄리 아구아데(스페인)와 함께 브람스 음악으로 만드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 참여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로 무산됐다. 대신 올해 세 안무가가 공연 취소 이후 1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안무한 작품을 선보이는 ‘그 후 1년’이 기획됐다. 김보라는 사운드 아티스트 카입과 함께 신작 ‘점’을 선보인다. 김보라는 “코로나19로 집에만 있으면서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더 크게 느꼈고, 그것이 신체에 미치는 변형에 주목했다”고 설명했다.
김재덕과 김보라는 한예종 출신이 모인 LDP 무용단에서 무용수로 활동하다 안무가로 나섰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안무 스타일은 확연히 다르다. 김재덕의 경우 움직임의 중심에 음악이 있다. 그는 “처음부터 춤동작을 생각하지는 않는다. 음악을 구상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움직임이 떠오른다”고 설명했다. 그가 2013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남성 무용수만으로 만든 모던 테이블은 ‘속도’ ‘맨 오브 스틸’ ‘야윈소리’ ‘털다’ 등 남성적 에너지가 가득한 역동적인 춤을 선보이고 있다.
20대부터 해외에서 안무가로 활동한 그는 어디서 작업하든 통용되는 안무 언어를 고민해 왔다. 그는 “내 춤동작에 ‘공기’ ‘구름’ 등 쉬운 단어를 붙였다. 이런 게 30여개 되는데, 어느 나라 무용수든 나와 클래스를 가지면 금세 익힌다”고 설명했다.
2010년 ‘혼잣말’부터 안무에 본격 나선 김보라는 2013년 아트 프로젝트 보라를 설립한 뒤 ‘꼬리 언어학’ ‘소무’ ‘인공낙원’ ‘실리콘밸리’ 등 화제작을 잇달아 선보였다. 그는 “강렬한 미장센에서 안무의 동기를 얻는다. 예전엔 안무의 깊이가 없는 건 아닌지 고민도 했지만, 이제는 장점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의 작품 가운데 여성주의 관점을 강하게 보여주는 ‘혼잣말’과 ‘소무’는 해외에서 자주 초청받았다. 하지만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성(性)에 대한 억압에서 벗어나려면 인간의 몸 자체에 관해 이야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설명했다.
흔히 부부는 같은 길을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향으로 걷는다고 한다. 김재덕과 김보라 부부는 현대무용이라는 방향 안에서 다른 방식으로 안무가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