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90세로 세상을 떠난 에즈라 보걸 하버드대 석좌교수는 미국 내 대표적인 동아시아 연구자였다. ‘덩샤오핑 평전’과 ‘재팬 애즈 넘버 원’이 대표작으로 꼽히며, 한국과 관련해서도 ‘박정희 시대’ ‘네 마리의 작은 용’ 등의 저술을 남겼다.
보걸 교수는 학술 활동뿐만 아니라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에도 깊게 개입했다. 백악관에서 동아시아 담당 분석관으로 일한 적도 있는 그는 한·일관계 중·일관계 미·중관계에 대한 미국 내 가장 중요한 스피커 중 한 명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대에는 대중 강경 정책에 대한 비판자이기도 했다.
이번에 번역 출간된 ‘중국과 일본’은 보걸 교수의 마지막 저서다. 중국과 일본의 1500년에 달하는 교류의 역사를 조명했다. 저자는 서문에 “세계 2대 경제국인 미국과 중국 간의 관계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라면, 아마 두 번째로 중요한 관계는 막 세계 최대 경제국 달성을 목전에 둔 중국과 세 번째로 큰 경제국인 이웃 일본과의 관계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라고 썼다.
중국과 일본, 이 길고 복잡한 이야기를 어떻게 책 한 권에 넣을 수 있을까. 저자는 양국 관계에서 커다란 전환점이 된 세 번의 시기에 초점을 맞춘다. 일본이 중국에게서 문명의 기초들을 배운 600년부터 838년까지, 중국이 일본에게서 배운 1895년부터 1937년까지, 그리고 두 나라가 관계를 정상화하고 다방면의 교류를 이어간 1972년부터 1992년까지가 그 시기들이다. 저자는 이 시기들을 세밀하게 재구성해 보여주는 한편, 이 시기들이 각각의 나라와 양국 관계에 미친 영향을 드러낸다.
책은 연대순으로 구성됐지만 지난 200년의 근·현대사가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책 뒷부분에는 60쪽 분량의 ‘주요 인물 전기’를 수록했다. 다나카 가쿠에이, 이시바시 단잔, 덩샤오핑, 리훙장 등 두 나라의 현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인물 14명의 일대기를 간략하게 소개했다. 이 책은 갈등이 두 나라의 관계를 주도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보걸 교수는 “일본과 중국이 친구라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는 마지막 장에서 중·일관계의 미래를 위한 협력 의제를 제안하고, 두 나라가 더 폭넓은 교류를 이어갈 것을 당부했다.
김남중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