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매, ‘폭력의 뿌리’가 될 수 있습니다

입력 2021-05-06 19:37 수정 2021-05-06 20:26
스웨덴의 동화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2002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60여권의 어린이 책을 썼다. 그는 평생 어린이와 여성, 동물 등 약한 존재들을 위해 목소리를 낸 활동가이기도 했다. 스웨덴 정부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기념 문학상’을 제정했으며, 유네스코는 2005년 린드그렌의 필사본 등 관련 기록들을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했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재단 제공

어린이날에 즈음해 ‘폭력에 반대합니다’라는 책이 나왔다. ‘말괄량이 삐삐’의 원작인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으로 유명한 스웨덴의 국민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1907∼2002)의 40여년 전 연설 한 편을 무슨 보물이나 되는 것처럼 정성스럽게 담아 놓았다.

린드그렌은 1978년 독일출판서점협회 평화상을 받는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71세의 린드그렌은 오래 준비한 연설문을 읽어 내려갔다. 이 연설은 아동 폭력 반대 역사에서 기념비가 된다. 린드그렌의 프랑크푸르트 연설 40년을 기념해 2018년 린드그렌재단이 만든 게 이 책이다.


린드그렌은 당시 연설에서 폭력과 전쟁으로 점철된 세계를 우려하면서 “우리는 모두 평화를 염원합니다. 그렇다면 너무 늦기 전에 우리가 근본적으로 변화할 가능성은 없을까요. 폭력으로부터 멀어지는 법을 배울 가능성은”이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는 곧바로 “저는 우리가 근본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어린이들과 함께 말이죠”라고 자기 생각을 밝힌다.

그는 어른들이 만드는 폭력적인 세계의 뿌리를 어린 시절 그들이 경험한 폭력에서 찾는다. 어린이를 비권위적으로 키우고 이렇게 자란 아이들이 어른이 된다면 세계가 평화로워질 것이라 생각한다.

“만일 지금 우리가 어떤 폭력도 쓰지 않고 고삐를 느슨하게 쥐고서 아이들을 키운다면, 영원한 평화 속에서 살아가는 새로운 인류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어린이들과 함께, 어린이들로부터 시작해서 평화를 만들자는 린드그렌의 생각은 동화적이면서 근본적이다.

그는 “인간을 계속해서 폭력으로 추동하는 어떤 결함이 인간 조건에 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 스스로 물어봐야 할 때가 아닐까요”라며 “우리가 예로부터 어린이들을 어떻게 다루고 길러왔는지 되돌아본다면, 신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여러 형태의 폭력으로 어린이들의 의지를 꺾는 일이 너무도 자주 일반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겁니다”라고 지적했다.

린드그렌은 그러면서 “한 아이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따뜻하고 열려 있으며 타인을 믿는 사람이 될지, 아니면 냉혹하고 파괴적인 독불장군이 될지는 아이를 세상의 일원으로 받아들여 사랑의 의미를 깨우쳐주는 사람들에 달려 있습니다”라고 강조했다.

세상에는 잔인함과 폭력과 억압이 넘쳐나고 어린이들은 그에 대해 날마다 보고 듣고 읽으면서 마침내는 폭력을 자연스러운 상황으로 믿을 것이라며 “적어도 우리의 가정에서만이라도 세상을 살아가는 다른 방식이 있음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말한다.

린데그린의 연설이 있은 지 1년 뒤인 79년 스웨덴은 세계 최초로 가정 내 자녀 체벌을 금지하는 국가가 됐다. 린데그린은 스웨덴이 체벌금지국이 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지지자였다.

시집처럼 얇은 이 책은 어린이날을 맞아 스스로 좋은 부모인가 점검하는 어른들에게 체벌에 대해 재고할 것을 촉구한다. 아직도 자녀를 체벌하는 부모들에게, 한두 번 때리는 건 괜찮다고 생각하는 어른들에게, 비권위적으로 키우겠다는 결심이 아이들을 방치하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이들에게, 체벌이라는 이름의 아동 폭력을 완전히 끝내는 것이야말로 어린이들에 대한 최고의 선물임을 알려준다.

‘선반 위 돌맹이’ 얘기는 린드그렌의 연설 중 가장 유명한 대목이다.

“어린 아들이 말썽을 저지른 어느 날, 이날만큼은 난생처음 아이에게 매를 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아이에게 나가서 회초리를 구해오라고 말했습니다. 어린 아들은 나가서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아이가 울면서 돌아와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회초리는 못 찾았어요. 그렇지만 엄마가 저한테 던질 수 있는 돌멩이를 구해 왔어요.’ 그 말을 듣고 엄마는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엄마는 두 팔을 벌려 아이를 끌어안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엄마는 아이가 가져온 돌멩이를 부엌 선반 위에 올려두었습니다. 돌멩이는 계속 그곳에 놓여 있으면서 엄마가 그 순간 스스로에게 한 약속을 영원히 일깨우게 되었습니다. 폭력은 절대 안 된다는 약속 말입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이 책을 ‘선반 위 돌멩이’처럼 집에 두고, 매년 어린이날이 다가오면 다시 읽으며 체벌 금지 의지를 확인하는 의식을 가져도 좋겠다. 한 시간이면 다 읽을 수 있는 분량이니 큰 힘이 드는 것도 아니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