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비핵화’로 표현 바꾼 美… 우리정부 입장 일부 반영한 듯

입력 2021-05-05 04:03

출범 이후 줄곧 ‘북한 비핵화’를 고집하던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최근 대북정책 검토를 마친 이후 ‘한반도 비핵화’로 표현을 변경했다. 극명하게 대비되는 도널드 트럼프 또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 한쪽을 일방적으로 답습하는 대신 실용적 접근방식을 통해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한 메시지라는 평가가 나온다. 우리 정부는 21일(현지시간)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이런 메시지를 발신함으로써 북한의 대미 공세 수위를 낮추고 궁극적으로는 북·미 대화가 재개될 수 있도록 총력을 다한다는 방침이다.

지난 3월 한·미 외교·국방장관(2+2) 회담 공동기자회견에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북한 비핵화(denuclearization of North Korea)’를 수차례 언급했다. 지난달 7일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이 브리핑에서 “우리는 북한반도, 아니 한반도라고 불러야만 하는 지역의 비핵화”라며 발언을 수정하는 일이 있었지만 같은 달 16일 미·일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도 여지없이 ‘북한 비핵화’로 기술됐다.

그러나 사키 대변인이 대북정책 검토가 완료됐다고 밝힌 4월 30일 브리핑부터 미국은 ‘한반도 비핵화(denuclearization of the Korean Peninsula)’로 선회했다. 미 국무부는 3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한·미 및 미·일 외교장관 회담 결과문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향한 한·미·일 공조’라고 했다.

일각에선 이런 변화를 유의미하게 봐야 한다는 견해가 나온다. 대북 강경 모드를 이어온 바이든 행정부가 우리 정부의 입장을 일정 부분 반영해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나오게 하기 위한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란 진단이다.

한 외교소식통은 4일 이런 변화에 대해 “핵 폐기에 준하는 상응조치를 하는 등 북한이 수긍할 만한 내용이 (대북정책에) 있으니 일단 나오라는 메시지로 읽힌다”고 말했다. 다른 소식통도 ‘대북 유화 메시지’라고 평가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과거 ‘전략적 인내’를 답습하지 않겠다고 한 상황에서 북한의 버티기 및 도발이 유효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미·일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핵 폐기)가 담기지 않은 점도 유사한 맥락이란 해석이 제기된다.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의 선제적인 완전한 비핵화를 고집하기보다 제재 완화 같은 상응조치를 동시적, 단계적으로 가는 등의 유연한 방식이 가능하다는 것을 시사했다는 설명이다.

정부는 대북 유화 메시지가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바이든 대통령에게서 나올 수 있도록 주력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 특성상 정상급에서 나오는 메시지의 무게감은 다르다”고 했다. 최고 지도자의 의사에 따르는 ‘톱다운’을 선호하는 북한으로선 바이든의 ‘입’을 통해 나오는 메시지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주요7개국(G7) 외교·개발장관회의 참석차 영국을 방문 중인 한·미·일 외교장관은 5일 회담에서 북한을 다시 대화 테이블에 앉힐 방안 등을 논의할 전망이다.

김영선 기자 ys85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