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남양유업이 수차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점을 사과하면서 회장직 사퇴의 뜻을 밝힌 것이다. 홍 회장은 “두 아들에게도 물려주지 않겠다”며 눈물의 기자회견을 했으나 8년간 이어온 ‘남양유업 불매운동’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홍 회장은 4일 서울 강남구 남양유업 본사에서 “온 국민이 코로나19로 힘든 시기에 불가리스 논란으로 실망하고 분노하셨을 모든 국민, 직원, 대리점주와 낙농가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한다”며 “이 모든 것의 책임을 지고 남양유업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장에서 홍 회장은 세 차례 허리를 굽혀 사과했다. 입장문을 읽으며 울먹이던 그는 “자식에게도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부분에서는 안경을 벗고 눈물을 닦았다. 결국 입장문을 다 읽지 못하고 자리를 떠났다. 1977년 남양유업 이사로 입사해 90년 대표이사 사장에 오른 데 이어 2003년부터 회장을 맡았으나 18년 만에 불명예 퇴진했다.
홍 회장의 장남 홍진성 상무(기획마케팅총괄본부장)는 지난달 보직해임됐다. 홍 상무는 기획마케팅총괄본부장으로서 이번 사태에 책임이 있을 뿐 아니라 회사 비용으로 고급 외제차를 빌려 자녀 등교 등 개인적 용도로 사용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홍 회장 일가가 경영 불참을 선언한 데는 3가지 요인이 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2013년 ‘대리점 밀어내기 사태’ 이후 계속된 불매운동으로 남양유업은 지난해 첫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위기 경영이 필요한 시점인데 오히려 ‘불가리스의 코로나19 억제효과’라는 엉성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면서 국민적 공분을 사게 됐다. 코로나19라는 민감한 사안을 들고나오는 무리수로 제품 생산의 약 40%를 담당하는 세종공장 2개월 영업정지 등 법적 처분까지 받게 됐다. 악재가 촘촘히 이어지자 이제야 오너 일가가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꼈다는 분석이다.
홍 회장 입장에서는 ‘큰 결단’을 한 것이지만 소비자 반응은 싸늘하다. 회장, 상무직에서 물러난다고 해서 홍 회장 일가가 남양유업과 완전히 결별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홍 회장은 남양유업 최대주주로 지분 51.68%를 갖고 있다. 최대주주로서 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상황이다. 홍 회장을 포함해 총수 일가 지분만 53.08%에 이른다. 홍 회장의 배우자 이운경씨는 0.89%, 동생 홍명식씨 0.45%, 손자이자 홍진석 상무의 아들 홍승의군이 0.06%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당장 급한 불을 끄기 위해 회장직에서 사퇴했으나 언제든 다시 말을 바꿀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대기업 총수들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뒤 경영에서 물러났다가 복귀한 전례가 흔하다. 경영 일선에서 책임지고 물러난다면서 지분은 처분하지 않는다면 ‘꼼수’ 논란에 휩싸일 수도 있다.
남양유업의 쇄신을 이끌 전문경영인을 찾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기업 이미지가 최악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선뜻 대표이사를 맡으려는 사람을 찾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식품업계 한 관계자는 “남양유업이 오랫동안 악명 높았던 탓에 외부에서 적임자를 찾는 것부터 난관이 될 수 있다”면서도 “오랫동안 탄탄히 기반을 만들어 온 기업이기 때문에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